‘피겨 여왕’ 김연아가 개척하고 꽃까지 피운 한국피겨스케이팅은 그의 은퇴 이후 잠깐의 침체기를 보내다 최근 급격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여왕의 연기를 보고 자란 남자 싱글 차준환(21·고려대), 여자 싱글 유영(18·수리고) 등 여러 유망주가 어엿한 성인 선수가 돼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특히 여자 싱글은 국내 정상권 선수 대부분이 세계 무대에서도 충분히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다. 올림픽 금메달 등 눈에 띄는 성과가 적어 체감하긴 힘들지만 선수층 깊이 등을 따지면 ‘황금기’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다.
이런 황금기 한국 피겨스케이팅에 또 한 명의 주목할 만한 이름이 추가됐다. 14세 여자 싱글 유망주 신지아(영동중)다. 그는 18일 에스토니아 탈린 톤디라바 아이스홀에서 열린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74.52점, 예술점수(PCS) 62.11점, 총점 136.63점을 받았다. 첫 번째 점프 요소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과 이어진 트리플 루프, 트리플 살코, 더블 악셀 등 단독 점프 3개를 연달아 완벽하게 뛰는 등 실수 없는 클린 연기를 해냈다. 이로써 하루 전 쇼트프로그램 점수와 합쳐 개인 최고점인 최종 총점 206.01점으로 이사보 레비토(15·미국·206.55점)에 이어 2위를 차지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가 피겨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은 김연아 이후 무려 16년이다. 김연아는 2005년 대회에 첫 출전해 라이벌 아사다 마오에 이어 은메달을 따내더니 이듬해 또 한 번 출전해서는 아사다를 꺾고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신지아는 이번 주니어선수권 최연소인 14세로 김연아가 2005년 은메달을 만들어냈던 나이보다 한 살이나 어리다. 아직도 주니어무대에서 발전할 시간이 충분히 남은 어린 선수인만큼 여왕이 걸어간 길을 따라 더 큰 선수로 성장해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훌쩍 더 커진다.
비록 이번 대회에 피겨 강국 러시아의 선수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징계로 출전하지 못해 경쟁이 예년보다 덜 치열했다 하더라도 어린 나이에 주니어 세계선수권 시상대에 오른 자신감을 통해 더 큰 선수로 발전할 수 있다. 신지아는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를 통해 “(김)연아 언니 이후로 16년 만에 메달을 딴 것 자체가 정말 기쁘다”며 “만족할 만한 경기를 치렀다. 생각지도 못한 은메달을 따서 놀랍기도 했고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많이 기대해 달라”고 소감을 전했다.
신지아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여자 싱글 선수층은 한층 더 두터워졌다. 이미 에이스 유영은 지난 베이징동계올림픽 등을 통해 세계 최정상권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을 입증했다. 김예림(19·단국대)과 이해인(17·한강중), 임은수(18·신현고) 등도 올림픽과 4대륙선수권대회, 그랑프리 등 여러 국제무대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신지아와 이번에 주니어선수권에서 4위에 오른 윤아선(15·광동중) 등 2∼3년 내에 시니어 무대에 데뷔할 유망주군도 탄탄해 피겨팬들은 향후 이들의 경쟁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