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베토벤 피아노 솔로 음반 작업 이후 평소에 늘 마음에 담고 있던 쇼팽 레퍼토리를 이번 음반에 싣고 싶었어요. (쇼팽은) 피아니스트로서 꼭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고, 그의 음악 세계가 깊고 좋기 때문입니다.”
‘쇼팽 발라드(Chopin Ballades)’ 음반 발매를 기념해 오는 29일부터 리사이틀 전국 투어를 갖는 피아니스트 조재혁(52)은 18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 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노의 영원한 시인 쇼팽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이미 원숙한 경지에 오른 피아니스트임에도 그는 “‘쇼팽이 (내 연주를) 마음에 들어할까’도 생각하며 정말 작정하고 연습한 뒤 녹음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굉장히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쇼팽의 발라드 네 곡과 피아노 소나타 3번으로 구성된 이번 음반은 2019년 10월 독일 하노버 라이프니츠홀에서 녹음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이제야 빛을 보게 됐다. 일반적으로 쇼팽 피아노곡으로 앨범을 만든다면 프렐류드나 스케르초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한 선곡이다. 왜 그랬을까.
“일반적으로 발라드 네 곡을 한 앨범에 담지 않는 것은 곡의 색이 너무 진해서예요. 하지만 발라드 2번은 어렸을 때부터 쳤고, 3번은 대학교 실기시험 때 연주해 함께 한 세월이 오래됐습니다. 소나타 3번은 평생의 과업과도 같은 작품이고요. 아무래도 애착이 가는 곡을 제 음반 컬렉션에 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쇼팽의 발라드는 영화 ‘피아니스트’(2002)에서 주인공 슈필만(에이드리언 브로디 분)이 독일군 장교에게 들려주었던 곡으로도 유명하다.
녹음 작업에는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클래식 프로듀서상을 수상하고 도이치 그라모폰 부사장을 역임한 마이클 파인과 세계적 톤마이스터(녹음 엔지니어)로 손꼽히는 최진 등이 참여했다.
젊은 시절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콩쿠르 1위, 모나코 몬테카를로 피아노 마스터스 국제콩쿠르 입상, 이탈리아 레이크꼬모 국제콩쿠르, 스페인 페롤 국제콩쿠르, 미국 뉴올리언스 국제콩쿠르 등에 입상한 조재혁은 클래식 토크 콘서트 등을 통해 국내 클래식 대중화에도 힘을 보탰다. 연주 활동 역시 왕성하다. 6개 음반 중 5개가 지난 10년 이내에 나왔고, 주요 오케스트라의 협연 요청도 많아졌다. 실력파 연주자들이 젊었을 적 국제적인 콩쿠르에 입상한 뒤 국제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나이를 먹으면 국내로 돌아와 교수가 되는 일반적인 음악가 커리어 길과 다른 행보다.
이에 대해 그는 “음악가의 커리어는 누가 계획할 수 없고, 기회가 비슷하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대 후반에 음악을 접으려고 했던 때를 떠올렸다. “국제 콩쿠르에 무수히 떨어지면서 회의감이 들었어요. 27살 때는 10개 콩쿠르 중 본선에 1개 될까 말까 할 정도였죠. 유치원 때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스포츠처럼 기록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 음악을 계속 할 자신이 없어 ‘다른 것도 해보자’고 하면서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어요. 더 이상 피아노 연습도 안 해도 되고 변호사시험 공부도 재밌었는데 6개월이 지나자 ‘그런데 음악은 어떻게 할 건데’라는 생각이 계속들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는데 ‘한번 사는 인생, 가난해도 되니 좋아하는 것 하다 죽으면 어때’라는 마음으로 다시 음악을 하게 됐어요.”
그는 이어 “박사과정에 진학한 후 배짱이 생겼고, 이전에는 남을 위해 음악을 했다면 그때부터 나 자신을 위해 음악을 하게 됐다”며 ”그러자 신기하게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줬다. 이후 몬테카를로 콩쿠르에서 입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재혁은 “청중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음악회에 와서 연주를 듣는 건 굉장하고 감사한 일”이라며 “언제 어디에서든 청중에게 만족스러운 음악을 들려줄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연주하려 한다”고 말했다. 국내 리사이틀은 29일 제주(서귀포예술의전당)를 시작으로, 천안예술의전당(5월 25일), 경남문화예술회관(5월 26일), GS칼텍스 예울마루(6월 3일), 롯데콘서트홀(6월 8일), 울산중구문화의전당(6월 9일), 전주한벽문화관(6월 11일), 강릉아트센터(6월 18일) 8개 도시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