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는 김오수 검찰총장을 향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제지하며 되레 문재인정부가 임명한 김 총장을 '엄호'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회의 시작 전부터 김 총장을 몰아세웠다. 김용민 의원은 소위원장인 박주민 의원을 향해 “검찰총장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끝내는 상황이 될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 의원들이 한마디 입장조차 내지 못하거나 의사 진행에 대해서 의견을 내지 못한다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현 제도 안착의 중요성과 위헌 소지, 송치사건 보완수사, 중요범죄 직접수사 폐지 등 크게 네 가지 문제를 제기하며 12여분간 검수완박에 대한 반대론을 펼쳤다. 김 의원은 김 총장이 발언을 마치자 “검찰을 대표해서 나와서 말씀하신다길래 오늘날 검찰이 왜 이렇게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이런 상황이 왔는지에 대해서 한마디 사과나 반성이라도 하실 줄 알았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부인 김건희 여사 연루사건을 지적하면서 “(검찰은)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며 “공소권 남용이 인정된 이두봉 검사에 대한 징계를 하지도 못하고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고 압박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그러니까 이게(검수완박 법안) 민주당을 위한 법이라는 것 아니냐”라고 반박했다. 박 의원은 “사전에 말한 바와 같이 오늘은 총장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라며 “모든 위원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사전에 양해된 바와 같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진정시켰다.
법사위에서는 완급조절을 하는 가운데 지도부는 연일 강경 모드로 속도를 끌어올렸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검찰 수사권 분리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2단계 권력기관 개혁이 마침내 첫걸음을 뗐다”며 “이제 검찰 기능의 정상화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기능이 정상화되면 국민에게 가장 좋은 일”이라며 “여야가 다툴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도 반대를 위한 반대 논리에 빠져 무조건 의사 진행을 방해하려는 구태에서 벗어나 합리적 대안 제시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이 전날 김 총장을 만나 한 발언도 검찰개혁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했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 말씀은 검찰과 경찰 사이 권한을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궁극적으로 국민 이익을 지키고 국민 인권을 지키느냐 이 기준으로 검찰개혁을 해 달라는 주문을 한 것”이라며 “시기 조정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도 이날 서울 강북구 4·19 민주묘지에서 참배 후 전날 문 대통령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원칙적인 말을 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지금은 국회의 시간이기 때문에 국회가 결정하는 것에 대해 입법부로서의 일이 있고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으로서의 일이 있는 것이므로 그런 부분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을 얘기하신 것”이라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김 총장과 면담에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개혁은 검경의 입장을 떠나 국민을 위한 것이 돼야 한다”며 “국회의 입법도 그래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이 민주당과 검찰에 모두 대화를 통한 해법을 주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따라서 이 같은 강행 처리 입장 고수는 당 지도부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유리한 측면으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속도 조절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검찰개혁 자체를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시점에서 우려되는 건 우리가 속도를 중시하다 방향을 잃을까 봐 하는 그런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 정책이나 부동산 대책, 코로나19 방역 대책, 지원 보상, 거리두기 이후 방역 대책 등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하는데 모든 현안이 검찰개혁 이슈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날에는 조응천 의원과 김해영 전 의원이 작심 비판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4월 임시국회 중 법안 처리 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당 관계자는 “의원들이 172명이나 된다. 여러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당에서 결정한 내용에 대해서는 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관은 최대 수치, 비굴은 최대 죄악” 국민의힘, 여론전 속 文 거부권 압박
국민의힘은 19일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밀어붙이자 대국민 여론전을 펼치며 총력 저지에 나섰다. 172석 민주당에 제동을 걸 수단이 마땅치 않자 저항과 협상을 병행하며 여론 형성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국민 독박, 죄인 대박, 검수완박 강행 처리의 마수를 드러냈다”며 민주당을 겨냥한 맹폭을 이어 나갔다. 동시에 그는 국회의장 주재로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마주 앉으며 협상 가능성을 모색했다.
권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전날 저녁 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를 단독 소집한 것을 언급하며 “박 원내대표가 국회법 규정하의 절차를 준수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시작부터 거짓말로 드러났다”고 맹비난했다. 권 원내대표는 “앞으로의 폭거 역시 예견된다”며 “민주당은 총선 때는 위성정당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위성의원을 모셔 왔다”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의 법사위 사보임을 직격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의 시간이라는 떠넘기기를 그만두고 대통령다운 모습을 보여 주시길 바란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재차 요청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을 향해서도 “헌법을 정면으로 반하는 검수완박법을 상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권 원내대표는 ‘방관은 최대의 수치, 비굴은 최대의 죄악’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을 언급하면서 “민주당의 입법 폭주와 이를 방관하는 정치인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도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의 입법 중단을 촉구했다.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인 이용호 의원은 이날 “민주주의 근간은 입법, 사법, 행정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라며 “입법부 의석이 다소 많다고 해서 국민적 동의 얻지 않고, 민주주의 삼권분립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사안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도 검수완박 법안과 관련해 “이 문제가 지금 국회에서 뜨겁게 논의되는 만큼, 윤 당선인도 차기 정부의 인수를 앞두고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여야가 오로지 국민의 삶에 집중해 민생 회복해야 한단 관점에서 지혜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대화의 소통을 더 활짝 열고 말씀을 나눴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민의힘은 대국민 여론전을 펼쳐 민주당의 검수완박을 저지하겠다는 계획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왜 이 법안이 문제가 있는지 부당성, 불법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대여론전을 펼치면 결국 국민을 이기는 정치집단은 없다”며 “민주당 태도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가지며 타협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권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일단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의장님께 중재,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 당 견해차가 커서 공통된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