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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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 직격탄… 생산자물가 또 사상 최고·무역적자↑ [한강로 경제브리핑]

3월 생산자물가지수가 3개월 연속 오르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사진은 21일 서울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축산물을 살펴보는 모습. 뉴스1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가 5년여 만에 최대폭으로 오르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액이 대폭 늘면서 무역수지도 지난달에 이어 2개월 연속 적자 가능성이 커졌다. 물가 불안 속 그동안 한국 경제를 지탱하던 무역수지마저 흔들려 거시건전성에 비상등이 켜졌다. 

 

◆생산자물가 한 달 사이 1.3% 올랐다…또 기록 경신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치·2015년 100 기준)는 116.46으로, 전월보다 1.3% 올랐다. 올해 들어 생산자물가지수는 3개월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월 대비 상승률(1.3%)은 2017년 1월(1.5%) 이후 5년2개월 만의 최고 기록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8.8% 오른 것으로, 16개월째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는 국내 생산자가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보여 주는 것으로, 소비자물가지수의 선행지표로 활용된다. 생산자물가는 일반적으로 1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물가 상승 압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전월 대비 기준으로 부문별 물가지수 등락률을 보면, 지수 산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산품은 2.3% 뛰었다. 특히 공산품 중 석탄·석유제품(15.6%)은 2020년 6월(21.3%) 이후 1년9개월 만에, 화학제품(2.8%)은 2021년 4월(3.4%)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상승 폭이 컸다. 석탄·석유제품 지수(194.75)와 화학제품 지수(121.21) 자체는 각각 역대 최고치다.

 

농림수산품과 전력·가스·수도·폐기물 부문은 0.2%씩 올랐다. 서비스 부문은 0.3% 높아졌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며 음식·숙박(0.9%) 지수가 상승한 영향이다.

 

수입품까지 포함해 가격 변동을 측정한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2.3% 상승했다. 원재료와 중간재, 최종재 모두 오른 영향이다. 국내 출하에 수출품까지 더한 3월 총산출물가지수도 2.2% 높아졌다.

2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달 들어 수출 17% 늘었지만…무역적자 52억달러

 

글로벌 공급망 충격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에너지를 중심으로 수입액이 수출액보다 더 많이 늘면서 무역수지 적자 폭은 확대되고 있다. 이날 관세청이 발표한 ‘수출입 현황’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통관기준 잠정치)은 362억85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9% 증가했다. 이 기간 조업일수는 15.5일로 작년과 같아 일평균 수출액도 16.9% 증가했다.

 

수입액은 414억84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25.5% 늘었다. 원유(82.6%), 반도체(28.2%), 석유제품(46.4%), 가스(88.7%), 석탄(150.1%) 등의 수입액이 늘었고 반도체 제조 장비(-16.0%), 승용차(-8.5%) 등은 줄었다. 특히 3대 에너지원인 원유(68억7500만달러), 가스(19억1000만달러), 석탄(14억900만달러) 수입액이 100억달러를 넘겼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는 51억99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연간 누계 무역수지는 91억5700만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무역수지가 77억6900만달러 흑자였다. 무역수지는 지난해 12월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세의 영향으로 2020년 4월 이후 20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이후 지난 1월 적자(48억8900만달러), 2월 흑자(8억3100만달러)를 오다가 3월에 다시 적자로 전환됐다.

21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 취임식에서 이 총재가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신임 한은 총재 “성장·물가 상충 속 균형 있는 통화정책 운용해야”

 

4% 이상 뛴 물가와 코로나19 이후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난 가계부채, 성장 둔화 속에서 공식 취임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갈림길에 선 우리나라가 경제정책의 프레임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취임식에서 현 상황에 대해 “가속하는 디지털 경제 전환과 세계화 후퇴 흐름이 코로나19 이후 뉴노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며 “신기술 확보 경쟁, 경제 블록화 등으로 국가 간 갈등이 심해지고 정치·경제·안보 등 이슈도 연계되며 국제정세가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가 새로운 변화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민간 주도의 창의적이고 질적인 성장’과 ‘수출과 공급망 다변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그는 “과거처럼 정부가 산업정책을 짜고 모두가 밤새워 일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기대할 순 없다”며 “잘 달리던 경주마가 지쳐 예전 같지 않은데도 과거의 성공에 사로잡혀 새 말로 갈아타기를 주저하는 누를 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현시점에 우리 경제에 닥친 시급한 과제로는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인구 고령화로 인한 청년실업과 노인빈곤, 지역 간 불균형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가계·정부 부채 등을 꼽았다. 이 총재는 “성장과 물가의 상충관계(trade-off)가 통화정책 운용을 제약하는 상황이기에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정책을 운용해야 할 때”라며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화정책만으로는 안 되며,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문재인 대통령도 이러한 부분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임명장 수여식 후 환담회에서 “현시점에서 제일 중요하고 국민에게 피부에 와 닿는 문제는 물가 안정”이라며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추되 성장도 함께 이루는 게 어려운 과제지만 꼭 챙겨 달라”고 당부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의 임무는 거시경제의 틀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쓴소리도 하겠다”며 “조용한 조언자가 아닌 적극적 조언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