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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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준비된 장군 이순신과 여수 유적지

국보 304호로 지정된 여수 진남관.

1592년 4월13일 일본군의 침공으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패전을 거듭하던 초반의 전투에서 반격의 물꼬를 틔우는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이었다. 1591년 2월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한 이순신은 일본의 대규모 침략을 예견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장군의 일기인 ‘난중일기’에는 왜란 전부터 적극적으로 군사를 지휘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순신은 각종 군사 기물과 시설을 점검하고 해전에 능한 병사와 선박을 확보해 나갔다. 특히 거북선 건조에도 힘을 기울였다. 1592년 2월8일에는 “이날 거북선에 쓸 돛 베 29필을 받았다. 정오에 활을 쏘았다”는 기록이 보이며, 2월25일에는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防踏)에 이르러 공사의 예를 마치고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長箭)과 편전(片箭)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투선은 어느 정도 완전해서 기쁘다”는 기록이 보인다. 4월12일에는 거북선 제작을 끝내고 선상에서 지자포(地字砲)와 현자포(玄字砲)를 시험발사하였다. 이순신이 군사들을 지휘한 역사적 현장이 현재 전라남도 여수시에 소재하고 있는데 진남관(鎭南館)이 그곳이다. 전라좌수사 재직 때 이순신이 지휘본부로 활용한 곳은 진해루였으나,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타 없어진 후 당시의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시언이 진해루 자리에 진남관을 세웠다. 이후 건물이 불에 타자 숙종 때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1718년 이순신 서거 12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세웠다. 진남관의 관문에 세운 망해루(望海樓)는 진남관 쪽에서 여수 시내를 바라보며 서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91년 4월 복원하였다. 진남관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오면 장군의 동상과 거북선 모형을 전시한 이순신 광장을 만나볼 수가 있다. 또한 여수시 웅천동에는 장군의 어머니 변씨가 살았던 고택이 복원되어 이순신의 효심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