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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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 된 우크라이나 고려인 입국 도와야” [차 한잔 나누며]

광주 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

강제 이주된 독립운동가 후손들
전쟁통에 항공권 없어 탈출 난항
광주 지역사회, 1억7000만원 모금
120명 입국… 500여명 아직 발묶여
주거·일자리 등 정착 지원도 필요
신조야 대표가 22일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광주 고려인마을로 귀국한 고려인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있다.

“아직도 500여명이 입국을 못하고 있어요.”

광주 광산구 월곡동 광주 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67·여)는 22일 기자에게 “도와 달라”는 말부터 꺼냈다. 두 달 전 러시아 침공으로 피란 생활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들의 딱한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전쟁 중에 빠져나오느라 미처 신분증조차 챙기지 못한 고려인들이 비행기표와 비자가 없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 대표는 전쟁 초기 이 같은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고려인 동포는 외국인이 아니라 국가가 돌봐야 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며 광주 지역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역사회는 곧바로 화답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가 항공권 15장을 지원했다. 광주 YMCA 250만원, 고려인마을법률지원단 500만원, 박용주씨 200만원 등 십시일반의 성금이 답지했다. 이날까지 1억7000여 만원을 모금했다.

신 대표는 성금으로 31장의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고려인 31명은 지난달 우여곡절 끝에 고려인마을에 들어왔다. 이날까지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제3국에 머물다가 신 대표의 도움으로 고려인마을에 들어온 고려인은 120명에 달한다. 100명은 자비로 항공권을 구입해 고려인마을로 왔다. 신 대표가 지난 20년간 고려인의 광주 정착에 힘쓰면서 지역사회와 유대 관계를 맺어 온 결실이다. 아직도 신 대표에게 항공권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고려인이 500명이 넘는다.

항공료와 비자, 여권 발급 등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이 고려인마을에 오기까지는 정부와 시민단체, 후원자 등 다양한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신 대표는 “광주시민과 사회단체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고려인을 한 명도 데려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신 대표가 광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이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인 그는 국제결혼을 해 광주에 살던 딸을 만나러 왔다가 훈훈한 인심에 반해 아예 둥지를 틀었다. 신 대표는 “초기에는 정부 지원도 없고 말도 서툴러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들어온 고려인 대부분은 자신처럼 특별한 기술이 없어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임금이 체불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고려인 후손들이 외모가 달라 이방인 취급을 받자 할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여기서도 차별과 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신 대표는 지역의 관광서와 시민단체를 찾아다니면서 ‘고려인의 뿌리’를 설명했다. 그는 “고려인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넘어간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며 “1937년 소련이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척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고려인의 일이라면 발이 부르트도록 쫒아다녔다. 고려인들의 임금 체불 문제로 고민하던 그가 2002년 지역활동가 이천영 목사를 만나면서 고려인의 광주 정착에 속도가 붙었다. 고려인들은 월곡동에 한두 명씩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이웃이 돼 2005년 고려인마을 공동체를 설립했다. 초등학교와 보건진료소, 협동조합 등을 갖춘 고려인 타운이 형성된 것이다. 현재는 7000여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고려인의 어머니’로 불리는 신 대표는 고려인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법무부가 주최한 ‘제11회 세계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신 대표는 이날 전화를 받느라 점심을 먹지 못했다. 그는 루마니아의 고려인 가족과 통화하면서 선교사를 만나 한국 입국을 상의하라고 안내했다. 신 대표가 받는 전화 대부분은 전쟁 중에 여권이나 신분증도 없이 무작정 탈출했다가 한국으로 오고 싶지만 비자를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피란민들이다.

요즘 신 대표는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부모와 형제 등 가족을 두고 있는 고려인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처지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신 대표의 또 다른 고민은 피란민의 정착을 돕는 일이다. 주거와 생활비, 일자리 지원이 그의 몫이다. 신 대표는 “이국 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고려인들의 손을 잡아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광주=글·사진 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