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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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르는 동물 학대 왜?… "피의자 대부분 불기소, 재판 받아도 벌금형"

지난 19일 제주시 내도동 도근천 인근 공터 땅에 묻힌 개. 신고자가 중고물품거래사이트에 게시한 사진 캡처.

최근 제주에서 동물학대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러나 동물학대가 중범죄라는 사회 인식과 달리 솜방망이 처벌이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주에서는 이달 반려견이 산 채로 땅에 묻히는가 하면 개 주둥이와 앞발을 노끈으로 묶어 유기하는 등의 동물 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산 채로 땅에 파묻힌 반려견이 발견된 사건 피의자는 견주인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제주서부경찰서에 따르면 견주 A씨 등 2명이 지난 21일 경찰에 자수,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앞서 지난 19일 오전 8시 50분쯤 제주시 내도동 도근천 인근 공터 땅속에 코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모두 파묻힌 푸들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를 벌여왔다.

 

자수한 피의자 2명은 견주와 견주 지인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견주 A씨가 ‘강아지가 몸이 아파서 묻어줬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석연치 않아 정확한 범행 동기를 수사하고 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우리 개가 평소 지병이 많았다. 시름시름 앓고 있어서 묻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의로 개를 학대하는 등 고통을 주려고 땅속에 묻은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A씨는 경찰 초기 조사 단계에서 ‘반려견을 며칠 전에 잃어버렸다’고 허위로 진술했다.

 

하지만, ‘강아지 생매장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공분을 사자 경찰에 자수했다.

 

땅에 묻혀있다가 인근을 지나던 주민에 발견돼 구조된 이 푸들은 현재 제주도 동물위생시험소 산하 동물보호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건 발생 당시 산책 중 강아지를 발견한 시민은 한 중고물품거래사이트 게시물을 통해 “반려견이 입, 코만 내민 채 몸은 땅에 묻혀 있었다”며 “바로 구조했지만 먹지 못했는지 몸이 말라있는 상태였고 벌벌 떨고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3일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유기견 보호센터인 한림쉼터 인근에서 주둥이와 앞발이 노끈에 묶인 유기견이 쉼터 봉사자에 의해 발견됐다.

 

유기견을 결박한 노끈 위에는 심지어 테이프까지 감겨있었으며, 앞발은 몸체 뒤로 꺾인 상태였다.

 

쉼터 측에서 구조 후 유기견의 등록칩을 확인해보니 이 개는 쉼터에서 지내던 개인 ‘주홍이’로 확인됐다.

 

구조 당일 사료조차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던 주홍이는 다행히 동물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묶여 있던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아 보이고 뼈에도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경찰은 주홍이 학대 용의자를 찾기 위해 수사를 진행 중이나 사건 현장 인근에 폐쇄회로(CC)TV가 없고, 민가와도 멀리 떨어진 곳이라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은 개를 묶은 방식이 동남아시아 범죄 조직의 납치 결박 수법과 비슷하다고 보고, 인근 외국인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다.

 

유기동물 없는 제주네트워크는 “동물보호법 위반 피의자 대부분은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재판을 받아도 벌금형을 선고받는다”며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이 동물 학대 범죄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생명을 경시하고 학대하는 세상에서 인간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며 “경찰은 이러한 사건을 진중하게 받아들여 동물학대범을 끝까지 찾아내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학대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며, 동물에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 유발 학대 행위는 2년 지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동물을 유기한 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11년간 동물보호법 위반 관련 현황’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동물보호법 위반 사범 4358명이 검거됐지만, 이 중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인원은 2751명(63.1%)이었다. 구속 인원은 5명에 그쳤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제주도 내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 발생 건수는 2019년 13건, 2020년 30건, 2021년 27건 등 모두 70건으로 이 중 검거 건수는 2019년 13건(19명), 2020년 19건(33명), 2021년 14건(21명) 등이다. 이 가운데 2019년 15명, 2020년 18명이 기소됐다.

 

지난해 제주지역 동물보호센터로 구조·보호 조치된 유기·유실 동물은 5364마리다. 2019년 7767마리에서 31% 감소했다.

 

한 애견 블로거는 “제주에서 관광객이 반려동물을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라며 “제주를 오가는 항공기나 선박에서 외국처럼 반려동물 등록증 인식칩 확인을 의무화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제주도는 동물 학대가 잇따르자 동물보호감시원을 투입해 동물 학대 시 처벌 규정 안내, 생명 존중 인식개선 홍보, 반려동물 안전조치 등 기본 사항을 점검한다.

 

이에 동물보호감시원들이 현장을 다니며 반려동물 안전 조치사항을 점검하고, 동물등록 사항 안내 및 동물 학대 관련 위반사항을 중점적으로 지도·홍보한다.

 

도는 또 도내 동물보호단체와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해 동물 학대 발생 시 피해 견의 치료, 보호 등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방침이다.

 

도내 동물보호단체와 상시로 동물 학대 예방 및 반려인이 지켜야 할 에티켓에 대한 지도·홍보도 강화한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