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중단에 국내 식품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곡물가격, 육류, 계란 등 식품 가격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국제 공급망 차질 등의 영향으로 치솟는 가운데, 가공식품 제조에 없어선 안될 ‘팜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또 한 차례 식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팜유’가 뭐길래?… 비누·초콜릿에도 쓰여
팜유는 야자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기름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이 아닌 가공식품 제조 과정에서 사용된다. 라면, 과자를 튀길 때 주로 쓰이며 카카오버터를 대신해 초콜릿에 들어간다. 비누 제조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팜유는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물성오일 중 가장 많은 36%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세계 팜유 생산량은 7145만t으로 이 중 57%인 4057만t을 인도네시아가, 27%인 1952t을 말레이시아가 생산했다.
수입을 가장 많이하는 나라는 2017년 기준 인도(918만t), 중국(530만t), 파키스탄(277만t), 네덜란드(260만t), 스페인(190만t) 순이다. 한국은 20위(50만7000t)였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팜유 수입량은 2012년 약 32만4900톤에서 2021년 약 60만5700톤으로 10년 만에 2배나 늘었다.
국내 식품업계는 3∼4개월 분의 팜유를 비축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중단에 따른 생산 차질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출 중단이 장기화할 경우 말레이시아 팜유 가격 상승, 대체재인 대두유 등 기타 식물성오일 가격 상승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건강·환경 해치는 팜유…‘팜유 프리’ 소비 확산
팜유는 식물성기름임에도 포화지방을 50% 이상 함유하고 있다. 포화지방은 상온에서 고체상태를 유지해 쉽게 상하지 않기 때문에 산패로 인한 악취나 발암물질 생성 등을 방지할 수 있지만, 과다 섭취할 경우 동맥경화, 고혈압 등 심장병을 야기하는 혈중 LDL 콜레스테롤 농도를 높여 건강에 해롭다.
보통 팜유가 들어가는 라면 한 봉지에는 포화지방 8g이 함유되는데 이는 하루 섭취 권장량의 53%를 차지한다. 과자 한 봉지에도 대략 8∼9g의 포화지방이 포함된다. 라면 한 개, 과자 한 봉지만 먹어도 하루 포화지방 권장량을 훌쩍 넘기게 되는 것이다.
팜유는 생산 과정이 환경을 파괴를 일으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팜유 생산자들은 숲을 태워 밭을 조성하는데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밀림이 불타면서 야생동물들이 터전을 잃고 있다는 주장이 그린피스 등 국제 환경단체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국제 연구에 따르면 현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팜농장의 45%는 1989년까지 숲이었다.
이에 환경 보호를 위해 비누, 화장품 등에 팜유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엔 윤리적 소비가 확산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팜유 프리’ 식품과 제품 리스트를 공유하며 팜유 사용 줄이기에 동참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포기할 수 없는 팜유…책임있는 생산·소비 요구
2009년, 정부가 비만 식품 규제에 나서면서 라면 업계에서 팜유가 퇴출될 것이라는 전망 기사가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라면은 팜유로 튀겨지고 있다. 그 사이 튀기지 않고 건조 공법으로 면을 제조한 라면들이 등장해 소비층을 늘려가고 있지만 유탕면은 여전히 팜유를 쓴다.
팜유는 가격이 저렴해 경제적이기도 하지만, 보존성이 뛰어나 품질을 오랜기간 유지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또 팜유를 사용할 경우 다른 식물성오일보다 바삭하게 만들 수 있으며, 고유의 향미가 강하지 않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식품업계는 품질면에서나 경제적 측면에서 팜유를 완전히 대체할 제품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해바라기씨유 등 다른 식물성기름 사용을 검토 했던 농심도 검토 수준에서 그쳤다. 농심 관계자는 “식품 안전성과 경제적 측면을 고려할 때 팜유를 대체할 수 있는 오일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건면 시장 개척을 통해 비유탕면 제품 라인을 확대하고 있으며 스낵의 경우 미강유 등을 혼합해(팜유3:미강유7) 팜유 사용량을 줄여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팜유 사용을 중단할 경우 오히려 더 많은 환경파괴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1㏊에서 생산할 수 있는 팜유는 2.84t으로 식물성 오일 중 생산성이 가장 높다. 2위인 해바라기씨유(0.71t)와도 큰 차이가 난다. 팜유를 해바라기씨유로 대체할 경우 현재 팜유 생산 면적 보다 4배 넓은 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에 국제사회는 팜유의 무분별한 사용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팜유를 생산하는 데 합의했다. ‘지속가능한 팜유 산업 협의체(Roundtable on Sustainable Palm Oil, RSPO)’를 설립해 삼림 벌채나 불법 화전 없이 팜나무를 재배하고 투명하게 유통하자는 것이다. RSPO 인증을 받은 팜유 생산농장 면적은 2017년 251만㏊에서 지난해 335만㏊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전 세계 팜농장 면적의 19.4%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팜유 바이어 평가보고서를 발간한 세계자연기금(WWF)은 “팜유를 생산하는 회사는 책임있는 생산을 위한 표준을 철저히 준수해야하며, 소비하는 회사는 공급 업체에 이를 확실히 요구해야 한다”면서 “또 정부와 금융기관이 불법적이고 무책임한 팜유 생산과 소비를 용인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고 소비자는 기업과 정부에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