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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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총리 "가스보다 자유가 비싸"… 獨에 ‘일침’

러시아산 가스·석유 의존하려는 행태 꼬집어
"오늘 우크라이나 문제는 내일 우리의 문제"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독일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는 모습. 방송 화면 캡처

“가스는 좀 비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는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북유럽 발트3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 카야 칼라스 총리가 독일 국민들에게 던진 말이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독일이 러시아와의 경제적 관계를 의식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극적이란 점을 따끔하게 지적한 것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위기를 막아야 한다”며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칼라스 총리는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나우만 재단(Friedrich Naumann Stiftung)에서 자유를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크레믈궁의 전쟁기계(war machine)”라고 부르며 “이 전쟁기계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면 러시아에서 가스나 석유 등 화석연료를 수입하는 일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몇몇 회원국이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멈추면 물가가 치솟아 서민들 고통만 가중된다’는 논리를 들어 금수 조치에 난색을 표하는 점을 의식한 듯 칼라스 총리는 “치솟는 인플레이션, 특히 에너지 비용의 급증이 초래할 경제적 고통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이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를) 선택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곧장 “가스는 비쌀 수 있지만, 자유는 값을 매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에너지 비용 좀 아끼겠다고 자유를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취지다. 칼라스 총리는 “국민들에게 ‘좀 더 많은 짐을 짊어져 달라’고 설득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오늘 이웃의 문제는 내일 우리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일이 조만간 독일 등 EU 회원국들한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베를린까지 140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에 중화기를 제공하라”며 시위를 하는 모습(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이날 ‘난민들의 사회 통합’을 주제로 열린 정부 행사에 참석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베를린=AP·EPA연합뉴스

칼라스 총리는 EU 역내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지원을, 특히 더 많은 고성능 무기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며 “만약 우크라이나가 패배한다면 이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패배”라고 단언했다.

 

이같은 칼라스 총리의 ‘작심발언’은 러시아에 유화정책을 펴왔고 현재도 ‘너무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듣는 독일 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숄츠 총리는 최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왜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금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돈을 벌려고 가스 수입 금지에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극단적 경제위기를 막으려는 것”이라며 “수백만개의 일자리와 다시는 문을 열 수 없게 되는 공장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과 관련해서도 “독일군이 더는 우크라이나에 중화기를 지원할 여력이 안 된다”고 거듭 못박았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독일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당사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