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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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나기 힘든 ‘배달 중독’… 일회용품 다이어트가 급하다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배달 쓰레기 줄일 수 없나요

코로나 장기화 속 배달수요 폭증
배달 폐기물 발생 덩달아 치솟아
“2025년 14.7만t·2030년 16.7만t”

환경부·배달앱·프랜차이즈업계 등
플라스틱 사용량 감량 협약 불구
이해관계 얽혀 실제 성과는 미미

다회용기는 비용 부담이 문제
소비자·업체 자발적 참여 미지수
용기재질 통일·경량화 제도 마련을

길고 지루했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일상이 돌아왔습니다. 코로나19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접어들면서 사적모임이나 영업시간 제한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습니다. 마스크만 빼면 일상을 구속했던 조치는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물론 ‘돌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일상도 있습니다. 밤 12시가 돼도 끝날 줄 모르는 부장님과의 술자리, 연수인지 여행인지 모를 워크숍 등이 그렇죠.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은 것도 있습니다. 배달음식 없는 일상입니다. 자가격리와 재택근무로 집밥 먹을 일이 늘면서 배달음식은 야식의 무대에서 삼시 세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지난해 오픈서베이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배달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 2위와 4위는 각각 ‘음식을 해 먹기 귀찮아서’(58.5%. 복수응답)와 ‘배달서비스가 익숙해져서’(43.5%)였습니다. 배달음식이 편리함만 주면 좋으련만, 죄책감도 함께 데려왔습니다. 맛있는 식사 후 일회용기를 버릴 때면 왠지 모를 미안함이 가슴에 내려앉죠.

 

다시 돌아온 일상, 음식배달 문화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요? 돌아갈 수 없다면 죄책감은 덜어 내고 편리함만 취할 방법은 없을까요?

 

◆“용기를 가볍게” 말뿐인 협약 2년

 

26일 경기 광주의 한 공장. 입구에서 공기샤워를 하고 기계실로 들어가니 커다란 두루마리가 기계에 감겨 돌돌 돌아갑니다. 폴리프로필렌(PP) 시트가 일정한 속도로 풀려 나와 금형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육중한 기계가 400℃의 열로 꾹 찍어 누르니 얇은 도화지 같던 PP는 순식간에 우리가 아는 배달용기가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용기는 음식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 시간 30분, 식사 시간 30분, 약 1시간 남짓 그릇의 소임을 마치고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코로나19 2년은 배달용기의 전성시대를 불렀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었다는 이 공장 김영철 대표(한국플라스틱포장용기협회장)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저희는 직접 생산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더 크게 체감할 수 있죠. 한 10년 전만 해도 연간 5%, 많아야 7∼8%씩 늘었는데 2015년쯤부터 배달앱 사용이 늘면서 10∼12% 정도 늘더라고요. 그러던 게 코로나 땐 30%까지 증가했으니까 확실히 변화가 느껴집니다.”

대표적인 배달앱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의 매출이 2019년 5600억원에서 2020년 1조원, 2021년 2조원으로 껑충껑충 뛰는 걸 보면 그럴 만하죠. 문제는 쓰레기도 같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플라스틱포장용기협회(이하 용기협회)의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PP와 폴리스티렌(PS) 재질의 배달·테이크아웃 폐기물 발생량은 2019년 9만t에서 2020년 14만6000t으로 92% 늘었습니다. 팬데믹이 지나고 음식배달 주문이 다소 둔화되리란 점을 감안해도 배달 폐기물은 2025년 14만7000t, 2030년 16만7000t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본인의 제품이 폐기물 증가의 온상으로 여겨지는 상황에 김 대표는 복잡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용기 규격화하고 표면에 인쇄나 스티커 없이 팔고, 버릴 때 분리·선별 잘하면 80∼90%까지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업을 이어 가려면 폐기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인 여건이 안 따라서 그렇죠.”

 

환경부는 2020년 5월 용기협회와 한국프랜차이즈협회, 배달의민족, 자원순환사회연대와 ‘포장·배달 플라스틱 사용량 감량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했습니다. 용기 두께 최소화, 재질 단일화, 표면 인쇄 자제, 소비자가 일회용 식기(수저·포크 등) 제공 여부 결정 등의 내용이 포함됐죠. 그로부터 2년이 지났습니다.

 

이 중에서 제대로 정착된 건 소비자가 일회용 식기 사용을 결정하는 것 정도입니다. 플라스틱을 20% 덜어서 만든 가벼운 용기는 개발해 놓고 모셔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용기 두께가 얇아져 뚜껑이 잘 열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에 배달앱과 가게는 시큰둥하고, 용기 제조사도 괜히 헛돈 쓰게 될까 봐 선뜻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눈치게임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확실한 인센티브나 규제가 필요하지만, 용기 재질 단일화와 두께 경량화를 담은 법 개정안은 국회 계류 중입니다.

◆다회용기 - 이상과 현실

 

일회용기 대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다회용기 카드를 꺼냈습니다. 지난해 6월 경기 화성 동탄 1·2지구에서 처음 등장한 다회용기 시범사업은 몇 달 뒤 서울 강남구에서도 시작됐고, 올해는 경기 용인 수지에서도 진행 중입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소비자가 배달앱에서 다회용기 주문을 누르면 가게는 다회용기 사업자로부터 빌린 용기에 음식을 담아 배달합니다. 소비자는 음식을 다 먹고 용기를 집 밖에 내놓는데 이때 QR코드를 찍어 회수 신청을 합니다. 다회용기 사업자 측은 용기를 걷어 세척·소독을 한 다음 다시 식당에 빌려줍니다.

 

경기도는 공공배달앱인 배달특급, 서울시는 민간배달앱을 쓴다는 점만 빼면 운영 방식은 같습니다. 시범사업 결과는 어땠을까요. 서울시가 주수별로 집계한 주문건수를 보면 시범사업 초기인 10월 중순에 비해 1월 하순엔 3배가량 늘었습니다. 화성시는 지난해 말 다회용기 주문율 50.3%를 보였습니다. 음식 용기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을 때 일회용기 대신 다회용기를 고를 확률이 절반 정도라는 얘기죠. 이렇게만 보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내막을 보면 좀 다릅니다. 서울시의 주문건수는 꾸준히 늘었지만 개인소비자(3개월 누적 1985건)는 3% 정도고 대부분 B2B(기업간거래,″3만9207건)입니다. 시범사업 2년 차 올해 참여 식당 목표치도 500곳으로 많지는 않습니다. 경기도는 올해 사업 지역이 지난해보다 넓어졌지만 참여 식당 수는 61곳으로 지난해와 동일합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다회용기 사업에 참여할 유인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합니다. 소비자들이 내놓은 다회용기를 걷어서 씻은 다음 다시 가게로 돌려주는 데는 비용이 듭니다. 지난해 서울시 시범사업에선 이 비용을 1000원으로 책정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와 경기도 모두 예산을 투입해 실제 소비자가 내는 돈은 없었죠.

 

진짜 ‘사업’의 영역에서 다회용기가 성공하려면 비용을 누가 낼 것인가, 하는 부분이 정리돼야 하는데 소비자들이 쉽게 참여할지 미지수입니다. 배달앱도 가뜩이나 배달료 이슈로 소비자 불만이 큰 상황에서 다회용기 비용까지 더해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가게도 손이 더 갈 수밖에 없고요.

 

서울시 사업에 참여한 다회용기 기업 잇그린 관계자는 “정부의 탄소중립 실천 포인트제를 활용하면 다회용기를 한 번 쓸 때마다 인센티브 1000원을 받을 수 있다. 해외에도 이런 사업 모델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고 했습니다. 환경부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요하기 때문에 배달앱 쪽에서도 참여하지 않으면 마이너스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규모가 커지면 다회용기도 이익이 나는 사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미래지향적이지만 ‘누가 다회용기에 지갑을 열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답으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부산에는 커피 전문점을 대상으로 다회용컵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정부나 시 보조금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민경 E컵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비자에게는 보증금을 받고, 가게로부터 컵값과 세척비를 받습니다. 일회용컵 구매 비용보다 다소 비싸지만 가게가 절감하는 수도·전기 요금, 인건비를 감안하면 비싸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에요.”

 

지난해 10월 8곳으로 시작한 다회용컵 사업은 현재 49곳으로 늘었습니다. 같은 다회용기인데 부산에선 독자적인 사업이 가능한 이유가 뭘까요. 우선 시장 참여자가 단순하단 차이가 있습니다. 배달음식과 달리 테이크아웃 음료는 소비자가 가게에서 직접 컵을 받아다가 돌려주는 방식이라 배달앱을 설득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오 대표가 강조하는 건 제도의 중요성입니다.

 

“일회용컵은 컵보증금제나 매장 내 사용 금지 같은 제도가 들어오고 있어서 업체 쪽에서 먼저 저희에게 연락을 해 오는 경우가 늘었어요. 유명 프랜차이즈나 서울에서도 협업 문의를 하는 곳이 있고요. 저희가 부산 동래구청에서도 사업을 하는데 여기서 지난해 말 일회용컵 반입 금지 조치를 했어요. 그랬더니 전에는 하루에 20∼30개씩 사용되던 다회용컵이 요즘엔 200개로 늘었어요. 제도의 유무가 문화를 바꾸는 데 정말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김영철 대표도 업계의 자발적인 변화만 바라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앞두고) 컵 표준용기 기준을 마련한 것처럼 배달용기도 재질이나 두께 등을 표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걸 정착시키려면 환경부가 적극 나서 줘야죠.”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공감대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상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겠지요.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