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거리에서 적기를 발견해 공격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공중전은 누가 먼저 상대방을 발견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엇갈렸다.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은 고성능 레이더를 지상에 설치, 적기를 찾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적의 공격에 노출된 레이더로는 적기 감시에 한계가 있었다.
대형 항공기에 레이더를 장착해 먼 거리에서 비행하는 적기를 포착하고, 아군 전투기를 지휘통제하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가 등장한 이유다.
하늘의 전투지휘사령부라고 불리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한국 공군은 미국 보잉이 개발한 E-737 기종 4대를 운용중이다.
하지만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확장 등에 따라 추가 도입이 필요하다는 공군의 소요제기 가 계속되면서,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늘리려는 움직임이 예전부터 진행되어왔다.
지난해 말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추가 도입 규모 등을 놓고 논란을 빚다가 예산이 대거 삭감됐지만, 관련 사업을 지속하려는 조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업 추진 걸림돌 곳곳에 있어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추가 구매하는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2020년 6월이다. 방위사업청은 제128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공중조기경보통제기 2대를 국외 구매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의 사업추진 기본전략을 의결했다.
의결된 계획에 따르면 2021~2027년 약 1조5900억 원을 투입해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군이 지난해 공중조기경보통제기 2대 추가 도입 소요를 제기하면서 “2대씩 따로 구매하는 것보다는 4대를 일괄 도입하는 방안이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국회 국방위원회는 지난해 말 2022년도 국방예산 심의 과정에서 항공통제기 2차 사업 예산 3283억 원을 감액했다. 국방위는 예산심사보고서에서 “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선 4대를 획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4대를 획득할 경우에는 소요와 타당성 재검토에 따라 사업이 1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산 대폭 삭감 이유를 밝혔다.
국회 예산삭감 직후 방위사업청은 올해 초부터 가격 등의 조건을 따져보는 등 항공통제기 2차 사업 추진을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실제로 운용하는 공군은 360도 및 전·후방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감시 능력 등이 포함된 기존 요구성능(ROC)을 그대로 유지하는 모양새다.
ROC를 충족하는 기종으로는 E-737이 꼽힌다. E-737은 미국 노스럽 그루만이 만든 톱해트(Top Hat)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가 장작된다. 3600도 탐색과 특정 지역 집중 감시 능력을 갖췄다.
한국 외에도 터키, 호주가 도입했으며, 영국도 구매를 결정했다. 미 공군도 노후한 E-3 중 일부를 E-737로 대체할 방침을 밝혔다.
문제는 가격이다. E-737은 처음 개발됐을 때, 미 공군용보다는 수출에 초점이 맞춰졌다. 도입 수량도 E-3에 훨씬 미치지 못한 상태다. 미 공군이 E-3 대체를 신속하게 추진하지 않는다면, 단기간 내 ‘규모의 경제’ 달성이 쉽지 않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악화 등이 겹치면서 E-737 대당 가격은 계속 상승해 8000억~9000억원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 사브가 개발한 글로벌아이 공중조기경보통제기는 ROC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ROC를 만족하려면 전자장비를 추가 장착해 성능을 검증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상승과 일정 지연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구매한 이후 추가 주문이 없고,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대당 가격도 7500억원 안팎 수준으로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추가 도입해 실전에 투입하려면 기체 외에도 창정비 기능과 훈련 등의 요소, 격납고를 비롯한 시설도 확보해야 한다. 이같은 지원 기능까지 합치면 총사업비는 당초 예상을 웃돌 전망이다. 사업 예산을 증액하거나 추진 방식을 변경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내 개발 전략 모색…업계 “가능”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인도, 브라질 등이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독자 개발을 추진하는 것과 맞물려 공군의 특수임무기를 국내 기술로 만드는 방안을 들여다보겠다는 의도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항공통제기 중·장기 국내 개발 전략 수립 작업을 진행중이다. 오는 8월 윤곽을 드러낼 개발 전략에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에 탑재할 레이더 확보를 비롯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검토한 결과가 포함될 전망이다.
방산업계에서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국내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당수의 전자장비를 국산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부족한 부분은 해외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을 감시하는 백두체계 능력보강 2차 사업은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개발의 밑거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등 국내 주요 항공우주산업체가 참여하는 백두체계 능력보강 2차 사업은 앞서 2011~2018년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으로 기존에 도입한 백두체계를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1차 사업을 완료했다.
여기서 확보한 기술을 토대로 업체 주관 연구개발을 추진하는 2차 사업을 진행 중이다.
2026년 말까지 4대의 신형 정찰기를 개발하며, 사업 규모는 8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탑재되는 장비는 통신정보(COMINT), 전자정보(ELINT), 미사일 발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화염탐지 기능이 포함된 계기정보(FISINT) 기능 및 지상과 항공기 간 데이터링크 기능을 갖춘다.
적 항공기를 먼 거리에서 감시할 레이더를 제외하면, 공중조기경보통제기에서 쓰이는 기능 중 다수가 사용되는 셈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백두체계 능력보강 2차 사업을 통해 다수의 기능을 체계통합하는 기술을 확보하면,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국내 개발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다는 평가다.
남은 문제는 레이더와 플랫폼 확보다. 레이더는 KF-21과 천궁 지대공미사일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관련 기술 등을 활용해 독자 개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기술 개발이 어렵다면, 유럽이나 미국 업체에서 도입하는 방법도 있다.
가장 큰 과제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로 활용할 항공기를 확보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개발한 항공기는 훈련기나 전투기, 수송헬기다. 지원임무를 맡을 기종을 개발하는데 쓰일 수 있는 국산 중대형 민간 항공기나 수송기 플랫폼은 없다.
실제로 백두체계 능력보강 2차 사업에서는 프랑스 닷소사의 비즈니스 제트기인 팰콘 2000LXS를 사용한다.
당초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플랫폼으로 거론된 기종은 유럽 에어버스의 A220 쌍발 엔진 여객기였다. 100~150석 규모의 여객기인 A220은 6000㎞ 이상의 항속거리를 갖고 있다. 대한항공에서도 운용한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전자장비를 채워넣고, 공군 요구사항에 맞는 수준의 탐지거리를 지닌 레이더를 탑재하려면 A220보다 더 큰 기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주목받는 기종이 유럽 에어버스 A320 쌍발 여객기다.
보잉의 B737에 맞서기 위해 에어버스가 개발한 A320은 우수한 연비와 플라이 바이 와이어(FBW) 시스템을 갖춰 1980년대부터 전 세계에서 폭넓게 운용됐다. 150석 규모로 최대 8000㎞까지 날아간다.
하지만 A320 기종이 군용으로 쓰인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국산 공중조기경보통제기에 A320을 활용하려면 별도의 개조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이는 에어버스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반면 군용으로의 전환이 어렵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중·대형 여객기를 군용으로 개조할 때, 가장 까다로운 기종이 공중급유기다. 기체 후방에 공중급유장치를 설치할 때, 비행 중 공중급유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비행 안전성에 이상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조종석에도 공중급유 관련 설비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는 레이더를 기체에 설치하는 과정과 전자장비 배치 등의 문제가 있지만, 조종석을 대규모로 개조할 필요성은 낮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으로 쓸 민간 항공기 가격까지 감안하면, 대당 3000억원 수준에서 국산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해군 장기 소요인 차기 해상초계기 사업에도 관련 기술과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