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였다. 최근 아르헨티나 물가는 살인적인 55%다. 미국 8.5%, 영국 7%다. 우리나라는 4.1% 올랐다. 2012년 이후 최고치다. 물가가 오르자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7%를 뚫었다. 환율도 4월26일 달러당 1272원까지 치솟았다. 수입물가 상승 압력이 폭증하고 있다. 이미 3월 수입물가가 작년 대비 35% 뛰었다.
더 큰 걱정은 지금부터다. “물가상승은 앞으로 1~2년 계속된다고 본다.” 4월19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인사청문회 답변이다. 망가진 글로벌 공급망은 쉽사리 복구될 것 같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도 조기에 끝날 낌새가 안 보인다. 세계은행이 5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경고한 배경이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폭주 부작용이 저소득층에 쏠리는 데 있다. 저소득층 체감물가 상승률은 고소득층보다 1.4배 높다(한국경제연구원). 인플레이션 불평등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다. 인플레이션은 눈에 안 보이는 세금 고지서다. 인플레이션 불평등은 조세 불평등과 다를 바 없다. 가난한 자가 더 많이 부담하는 역진적(逆進的) 세금이다.
인플레이션 불평등은 왜 발생할까. ①우선 저소득층은 소비지출에서 생활필수품(식료품, 주거·수도·광열비, 보건) 비중이 높다. 소득의 절반 이상(55.5%)이 생필품 사는 데 들어간다. 이에 비해 고소득층은 21.7%만 쓴다. 저소득층 생계비 부담이 여유 계층의 두 배 이상인 거다. 새 정부가 서민 생활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건 이유일 거다.
②상품 구매할 때 저소득층은 선택 폭이 좁다. ‘장인라면’ 마트 판매가격은 2200원, ‘농심 신라면’은 540원이다. 물가가 10% 오르면 장인라면 2420원, 신라면 600원이 새 가격이다. 장인라면을 비싸게 느끼면 고소득층은 대신 신라면 사면 된다. 원래 신라면 사먹던 저소득층은 이것저것 고를 여지가 없다. 꼼짝없이 오른 가격을 부담한다. 라면 가격 인상이 고소득층에는 체감물가를 낮출 기회인 거다! 인플레이션 불평등의 역설이다.
③할인 이점이 큰 양판점(量販店) 대량구매도 기초생활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비싼 줄 알면서 소량구매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생활이 어려운 고령층은 온라인 구매에 익숙지 않다.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온라인 쇼핑 기회는 매번 남의 일이다.
아르헨티나는 인플레이션 불평등에 맞서 서민 구매력을 지키는 정책을 도입했다. 고정소득이 없는 저소득층(비공식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에게 특별지원금을 지급했다.
인플레이션 불평등 대응수단으로 미국식 ‘생계비 조정(COLA·cost of living adjustment)’ 조항을 고려할 수 있다. 물가 상승분을 임금 인상에 자동 연계하는 방식이다. 2022년 미국 COLA는 5.9%다. 2021년 받은 공적연금이 1만달러면 올해는 1만590달러 받는다. 한발 더 나아가 저소득층에 더 높은 COLA를 적용하면 인플레이션 불평등 해소방안이 될 수 있다.
불평등 치유는 측정(measurement)에서 시작된다. 세금 매길 때 소득 파악이 기본이다. 인플레이션 불평등도 통계가 있어야 지원 대상자를 선별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 이슈보다 주목을 덜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통계가 빈약하다. ‘소득계층별 인플레이션 불평등’이 깔끔히 드러난 소비자물가지수 편제가 시급한 까닭이다.
통계(statistics)의 어원은 국가(state)와 정치가(stateman)다. 국가 통치·운영의 주춧돌이 통계다. 주춧돌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진다. 문재인정부에서 통계청은 통계 불신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소득분배지표 갈등 와중에 청장이 경질되는 수모를 겪었다. 소득계층별 인플레이션 불평등 통계는 저소득층 지원에 주춧돌이다. 통계청이 민생통계 최고권위 기관으로 우뚝 서기 바란다.
“불공평한 게 인생이다.” 1962년 3월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연설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는 공평해야 하지 않겠는가. 5월10일 출범하는 새 정부에 이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