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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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은 한순간, 복구는 한평생”… 더 방치할 수 없는 재해 [심층기획]

산불 대응 획기적 대책 절실

2019년 8월 신설된 산림청 ‘스마트대응단’
화재진압 첨단장비 개발 뚜렷한 성과 없어
야간 헬기 진화 한계… 전문인력도 태부족
실화자 검거율 41% 그쳐… 솜방망이 처벌
전문가 “내화수종 식재… 확산 차단 중요”

나무심기 행사 취지 퇴색 논란

“전국민 운동 전개 경각심 고취해야”
기후변화 따라 3월말로 변경 주장도
지난 3월4일 강원 삼척시 원덕읍 일대에서 진화대원이 산불을 끄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삼척=뉴시스

지난 3월 강원·울진 지역을 휩쓸고 간 산불은 수많은 이재민을 낳았다. 주불 진화에만 213시간이 걸려 국내 역대 최장 화마로 기록됐다. 피해 면적만 2만523㏊에 달해 산림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한국은 전체 면적의 63.2%(633만5000㏊)가 산림이다. 국토 면적 대비 산림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핀란드, 일본, 스웨덴에 이어 4위다. 하지만 최근 크고 작은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산림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6일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4월4~11일 전국에서 78건의 산불이 났다. 하루 평균 10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한 셈이다. 산불은 인명·재산 피해를 초래할 뿐 아니라 생태계도 파괴한다. 산림을 복원하려면 불에 탄 나무를 베고 옮기고 새 나무를 심어야 해 막대한 비용이 든다. 여기에 동식물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복구하려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이상이 걸린다.

산불로 인한 피해는 엄청나지만, 산불을 낸 이들 중 절반만 검거되는 데다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친다. 산불 진화 역시 헬기 의존도가 높아 한계가 많은 데다 전문 인력도 부족해, 획기적인 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스마트대응단 명맥 끊겨… 지나친 헬기 의존도 문제

정부는 그간 ‘미래형 화재 진압’을 위해 전담 조직을 만들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산림청은 2019년 8월 ‘스마트산림재해대응단’을 신설했다. 대응단은 산불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입는 로봇’과 ‘지능형 안전모’ 개발 등에 착수한다고 발표해 기대를 모았다. 그동안 수십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산불이 대형화하면서 4차산업 기술을 적용한 장비의 중요성이 날로 중요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응단은 초기 발표와 달리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올해 초 명맥이 끊겼다. 산림청 관계자는 “2년 동안 대응단을 운영한 뒤 정규조직으로 개편할 수 있었지만, 유지 대신 기존 부서에 업무와 인력을 재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면서 “현재 대응단 업무는 산불과와 정보통계담당관실 등이 나눠서 한다”고 설명했다.

기술 개발에 큰 진전이 없는 가운데 최근 산불진화 헬기 의존도는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야간에는 안전상의 문제로 헬기를 띄울 수 없어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진화 인력이 부족한 것 역시 문제다. 산불조심 기간에 운영하는 산불방지 인력은 2만1600명이다. 언뜻 보면 많은 것 같지만, 이들 상당수는 봄·가을 한 해에 두 번 선발돼 2~6개월간 일하는 계약직이다. 게다가 취약계층을 우선 선발해 실제 산불이 났을 때 진화에 나설 인력은 많지 않다고 현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황정석 산불방지정책연구소장은 “산불의 85%가 항공 진화라고 치면 나머지 15%는 고도로 숙련된 인력이 직접 산불 현장에 올라 불길을 잡아야 한다”면서 “과감한 투자와 대대적인 인력 증원을 통해 미래 재난성 산불에 대비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불 실화 검거율 41% 그쳐… 처벌 강화 목소리

산불이 발생한 주원인은 입산자 실화와 쓰레기 소각, 담뱃불 등 부주의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산불 실화자의 검거율은 41%에 불과하다.

실제로 최근 5년(2017∼2021년) 동안 발생한 산불 2810건 가운데 가해자 검거 건수는 1153건으로 집계됐다. 2016년 한때 검거율이 50%를 넘기기도 했지만, 2020년에는 39%까지 떨어졌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생활권 내에서 발생하는 소각 산불은 쉽게 검거할 수 있지만 불특정 다수가 드나드는 입산자 실화의 경우 쉽지 않다”면서 “현재 상황에선 폐쇄회로(CC)TV를 늘리고 철저히 감시해 산불을 예방하는 게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어렵사리 산불 가해자를 검거해도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는 것 역시 문제다. 처벌 강도가 경미해 산불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질 수 있다. 현행 산림보호법은 다른 사람 소유의 산림에 불을 지르면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자기 소유 산림에 불을 지를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내린다. 실수로 산불을 낸 경우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하지만 산불 실화자를 검거하더라도 처벌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5년(2017~2021년) 동안 검찰에 송치된 1153명의 산불 실화자 중 25명(2.1%)만 징역형을 받았다. 산불을 낸 50명 중 1명에게만 실형이 내려진 셈이다. 벌금형은 237명(20.5%)으로 확인됐다. 이마저도 산불 실화자가 낸 평균 벌금은 184만7000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891명(77.3%)은 기소유예 등의 처분에 그쳤다.

경북 울진과 강원 강릉·동해·삼척 등에 기록적인 피해를 남긴 동해안 산불 발생 한 달이 지난 4월 3일 오전 강원 동해시 일원의 산림에 불길이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연합뉴스

◆“내화수목 띠처럼 둘러 산불 확산 차단”

산림청은 갈수록 대형화·장기화하는 산불에 대응하고자 머리를 맞대고 있다. 먼저 연간 350㏊ 규모의 내화수림대를 조성한다. 산불 위험을 낮추고 확산을 억제하는 내화수림대를 도로와 철도, 마을, 능선 등에 띠 모양으로 둘러 심는다. 최근 발생한 산불이 강풍으로 비산 거리가 1㎞ 이상을 기록한 만큼 산림 곳곳에 활엽수인 내화수목을 심는다면 기존 침엽수보다 강한 내화성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내화수목으로는 굴참나무와 은행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 등이 있다.

산불피해지의 복구·복원 사업에도 속도를 낸다. 피해산림 복구는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응급복구’와 산림생태계 회복 목적의 ‘항구복구’로 나뉜다. 응급복구는 6월 장마철 이전에 집중호우로 토양유실 등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에 산사태 예방사업을 한다. 생활권 주변은 긴급 나무 베기를 하고 복구 조림에 착수한다. 또 현재 157㎞인 산불진화 임도를 2030년까지 6357㎞로 늘린다. 담수 기능을 갖춘 물가두기 사방댐도 2027년까지 63곳을 설치한다.

강원석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박사는 “산불에 잘 견디는 나무들을 산불 피해지에 심어 대비하는 것이 내화수림“이라며 “주요 시설물과 산불 발생 위험지역에 방화대 형태로 조성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불 피해지의 경우 양분층과 토양이 불에 소실돼 기본적인 생육이 잘 되지 않는다”면서 “생육에 좋은 환경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각 지역 토양 특성에 맞는 내화수종을 심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 3월 23일 시민단체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서울 강서구 오쇠동에서 이팝나무 등을 식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산림 보호 위해 식목일 공휴일 지정해야”

 

식목일을 다시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불 피해지 복구에 필요한 것은 물론 대부분의 불이 부주의로 발생하는 만큼 산림 보호를 위한 전국민 운동을 전개해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취지에서다.

 

6일 산림청에 따르면 식목일은 1946년 4월5일 제정됐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산야가 황폐해지자 정부는 직접 나서 나무 심는 날을 제정하고 식재 장려에 나섰다. 정부는 3년 뒤 식목일의 중요성을 인정해 사방의 날(3월15일)을 공휴일로 지정했으나 이듬해 폐지했다. 이후 1961년 식목일(4월15일)을 공휴일로 부활시켰으나 2006년 본격적인 주5일제 도입 등과 맞물려 다시 제외했다.

 

일각에선 현재의 식목일은 취지가 많이 퇴색됐다고 본다. 매년 공공기관에서만 나무심기 행사를 벌일 뿐 식목일에 대한 개인 관심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나무는 우리 생활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관계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면서 “백년대계를 위해 나무심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 위기 시대에 나무 심기는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며 “최근 떠오른 탄소 배출 문제 등 환경 문제의 대안으로 식목일의 공휴일 지정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로 식목일을 3월 말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환경단체 등에 따르면 나무 심기에 최적인 온도는 땅이 녹은 직후인 6.5도이다. 하지만 식목일이 있는 4월의 평균 온도는 10.6도다. 이 때문에 일부 자치단체는 오래전부터 식목일 이전에 나무 심기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는 서울 마포구와 충주시, 보령시, 영주시 등 수많은 자치단체가 3월로 날짜를 앞당겨 식목일 기념 행사를 가졌다.

 

환경단체들은 미래 가치를 위해서라도 식목일을 앞당겨야 한다고 본다. 산림단체 등에 따르면 나무 한 그루는 연간 35.7g의 미세먼지를 흡수한다. 나무 한 그루가 50년 동안 내는 환경보호 효과는 1억4000만원의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그만큼 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에 맞춰 심는 게 중요하다.

 

이민호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여러 환경단체가 2010년부터 13년째 3월 중순에 온난화 식목일 행사를 열고 있다”면서 “탄소배출 등 숲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는 상황에서 기후변화에 맞춰 식목일 날짜 변경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동·춘천=배소영·박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