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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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12만명에 투표권… 지방선거 변수로 [이슈+]

영주자격 취득 3년 지나면 지방선거 투표권
유권자 중 12만명이 외국인…79%가 중국인
민주당 외국인 투표 유리, 국힘은 불리 관측
사진=뉴시스

“한국에서 일하고 한국에서 밥 먹고 한국에서 돈 벌면 한국 사람입니다.”

 

2010년 개봉한 저예산 영화인 ‘방가방가’에서 실직에 고생하던 주인공 방태식은 부탄 출신 노동자로 위장 취업한다. 그 뒤 악덕 기업인에 대항한 태식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한국에서 일하면 한국 사람이라고 외친다.

 

투표권은 그 자체로 국민의 중요한 권리이고, 권리를 찾는 수단이기도 하다. 투표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인데, 총선이나 대선과 달리 지방선거는 영주자격(F-5)을 취득한 지 3년이 지난 등록외국인에게도 투표권을 준다.

 

동시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12만명에 달하는 외국인 유권자들이 중요한 승부처로 떠올랐다.

 

◆지선유권자 중 12만명 외국인, 10만명이 중국 동포

 

3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6·1 지방선거의 외국인 유권자 수는 12만6668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는 2018년 6월13일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 당시 10만6205명보다 19.3% 증가한 수치다. 총선거인 대비 외국인 비율은 제4회 0.02%, 제5회 0.03%, 제6회 0.12%, 제7회 0.25%로 줄곧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외국인 유권자 가운데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 국적은 중국동포 등 중국인으로 78.9%(9만9969명)다. 이어 대만 8.4%(1만658명), 일본 5.7%(7244명), 베트남 1.2%(1510명), 미국 0.8%(983명) 순이었다.

2006년 4월 15일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선거권이 주어지는 외국인 유권자가 서울 중구 한성화교소학교에서 열린 투표시연회에서 선관위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직접 모의투표를 해보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는 투표권이 없었지만, 민주당이 다수였던 2005년 국회가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일정 자격을 갖춘 외국인에게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투표권 부여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는 아니다. 성결대 다문화평화연구소의 지방자치선거와 이주민의 참정권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나라는 45개국에 달한다.

 

영국은 영연방 출신의 등록외국인, 아일랜드 시민 일부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회원국은 1992년 유럽 통합을 위한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계기로 일정 기간 외국에 주소를 갖고 살았다면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호주도 시민권을 보유하지 않은 일부 이주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외국인 투표자가 늘어나면서 외국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받은 후보들도 잇따라 선거에 뛰어들고 있다. 네팔 출신으로 2009년 한국으로 귀화환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인 수베디 여거라즈씨는 경기도의원 비례대표로 도전장을 냈고, 중국 동포 밀집 지역인 경기도 안산시장 후보에는 귀화한 중국 동포가 도전장을 냈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당 대외협력지원단장을 지낸 무소속 김만의 후보다.

 

안산시는 중국인과 중국 동포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5만8000여명에 달한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에 공개 영상을 올려 글로벌 대기업 유치와 청년 일자리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 2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청사 외벽에 홍보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인 투표 늘수록 유리한 민주당, 불리한 국힘

 

우선 외국인 투표자 수가 많아지면 다문화 정책을 강조해온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영주권이 있는 중국인들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당시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당시 화교 3세인 장영승 화교협회 전 사무국장은 연단에 서서 박 후보 지지 연설을 했다. 그는 “대한민국과 서울시에 납세 의무를 다하며 살아왔다”며 “박 후보는 시민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시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살기 좋고 선진화된 서울을 만들어 내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회를 맡은 서영교 의원은 “화교는 국회의원 선거 투표권은 없지만 서울시장 투표권은 있어서 박 후보에게 투표권을 행사하겠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지방 선거 투표권이 있는 외국인 중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인의 표심을 파고 든 것이다.

 

외국인 유권자들이 늘어난 게 불편한 국민의힘에선 외국인 투표권을 제한하기 위해 공정성을 내세우기도 한다. 김은혜 국민의 힘 경기도지사 후보는 지난달 13일 “우리 국민은 단 1명도 중국에서 투표하지 못하는데 10만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우리나라 투표권을 가지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연합뉴스

김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우리 국민이 어떤 국가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우리도 이를 제약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중국에서 한국인이 투표권을 가질 수 없으므로, 한국도 중국인이 투표권을 가질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국 최대 광역단체장으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국민의 설득을 구하겠다”며 “법안 통과를 돕고 시행 과정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투표 제한 의사를 피력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