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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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하루 6시간 49분 공부… 노는 시간은 49분

어린이날 100주년 ‘놀 권리’ 선언

韓 청소년 행복지수 OECD 꼴찌
전문가 “놀 권리 정책적 보장해야”
방긋 웃는 동심 100주년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뛰어놀고 있다.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을 주축으로 한 천도교소년회가 1922년 5월1일 제정했다. 과천=남정탁 기자
#.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하은(가명)이의 하루는 정신없이 바쁘다. 아침 7시 조금 넘어 일어나 등교한 뒤 꼬박 5교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하교 후에는 요일별로 논술, 수학, 과학 학원에 가고, 주요 과목 사이사이 피아노와 미술 학원도 가야 한다. 저녁 식사는 학원을 같이 다니는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때우기 일쑤다. ‘방학 때라도 놀 수 있느냐’고 묻자 하은이는 “방학이 오히려 더 바빠요. 다녀야 할 학원이 늘어나거든요”라면서 “학원 걱정 없이 친구들이랑 실컷 놀고 싶어요”라고 하소연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일제 치하에 아이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을 뜨고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해 소년운동을 펼쳤다.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했고, 이듬해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 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라고 했다.

 

올해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한국아동단체협의회가 다시 쓴 선언문에는 문구가 “어린이가 놀이와 여가를 즐기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줘야 합니다”로 바뀌었다. 100년 전 어린이들에게 필요했던 게 놀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공간은 물론 놀 시간까지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4일 어린이날 100주년을 앞두고 어린이의 ‘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에 억눌리고 있고, 이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것이 한국 아동·청소년들의 현실이다.

 

공부에 치중된 아이들의 생활은 여러 조사에서 드러난다.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초등학생의 하루 평균 여가는 49분에 불과하다. 반면 하루 평균 학습시간은 6시간49분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국제아동 삶의 질 조사에서는 행복도를 평가하는 항목 중 특히 ‘시간 사용 만족도’에서 우리나라 아이들은 35개국 중 31위로 순위가 낮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초·중·고등학생 2992명을 대상으로 1일 활동 시간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수업 5시간41분 △학원(과외) 2시간8분 △자율학습 1시간49분 등을 포함해 학습시간은 총 9시간38분이었다. 하지만 △사교활동 2시간7분 △게임활동 1시간26분 △취미활동 1시간13분 △신체활동 59분 △문화예술활동 29분 등을 합한 여가시간은 6시간14분으로 학습시간에 비해 3시간 이상 짧았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해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 국가 중 22위이며, 국제아동 삶의 질 조사에서 만 10세 아동 행복도 순위는 조사 대상 35개국 중 31위였다”면서 “우리 사회가 한 세기 동안 어린이날을 기념해 왔으나, 정작 당사자인 아동·청소년이 느끼는 행복과 삶의 질은 상당히 우려할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놀이는 밥이라고 얘기해도 될 정도로 아이들에게 건강한 발달의 기초가 된다. 단순히 심리적인 부분뿐 아니라 신체적 건강도 좌우한다”면서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학업에 얽매여서 뿔뿔이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놀이 시간도 없고 같이 놀 친구도 없다. 어른은 자기 노동 시간 줄이려고 하면서 아이는 놀이 시간 못 갖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뉴스1

놀이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틈’을 찾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서 여가시간이 2018년보다 49분 늘었는데, 이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 동안 친구와의 대화, 예체능 수업이 포함된 결과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학교가 놀이 시간을 보장해줄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영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동·청소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정과 학교에서는 놀이 활동을 확보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고, 오히려 놀이를 학업의 부수적인 행위나 심각하게는 방해가 되는 부정적인 행위로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라며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적 지원을 강조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