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3% 줄여야 한다.’ ‘지금 추세면 2100년 지구 온도는 3.2도 오른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런 전망은 어디서 내놓는 걸까. 기후를 연구하는 기관은 많지만, 가장 공신력있는 곳을 하나만 꼽자면 단연 IPCC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인데, 쉽게 말해 세계에서 가장 최신의, 다양하고 믿을 만한 기후변화 관련 연구를 모아 보고서를 펴내는 곳이다. 파리 기후협약같은 굵직한 국제협약이 IPCC 보고서를 토대로 한다.
2015년 제5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한 지 6년 만인 지난해 제6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 보고서가 나왔다. 이어 지난 2월과 지난달 4일에는 제2·3실무그룹 보고서가 연이어 발표됐다. 전 세계 250여명의 학자가 참여한 세 번째 실무그룹 보고서 ‘기후변화 완화’ 편에는 한국인 저자도 총 세 명이 참여했다. 정태용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김용건 한국환경연구원 박사, 문종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박사가 그들이다. 정 교수는 15장 기후금융 부분 총괄주저자를, 김 박사는 온실가스 배출 추세와 동인을 분석한 2장의 주저자를 맡았다. 문 박사는 총괄주저자를 도와 자료 정리와 팩트체크 등을 담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한 전 세계 연구진들은 온라인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본업을, 밤에는 IPCC 저자로서 역할을 다하며 수 주를 보내야 했지만 “참여할 때마다 앞선 연구자와 교류하고 더 열심히 연구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된다”고 밝혔다. 다음은 지난 2일과 4일에 만난 저자들과의 일문일답.
―제6차 IPCC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셨다. ‘IPCC 보고서’라는 게 많은데 체계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문종우 박사(문): IPCC 보고서는 평가보고서와 특별보고서로 나뉜다. 평가보고서는 △실무그룹1(과학적 근거) △실무그룹2(영향, 취약성, 적응)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을 담은 △실무그룹3(완화)으로 나뉜다. 이렇게 세 평가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모은 종합보고서가 있고, 목적에 따라 특별히 내놓는 ‘1.5도 보고서’ 같은 특별보고서가 있다.
―이번 실무그룹3 보고서는 기후변화 현상을 어떻게 진단하나. 보고서에 ‘지난 10년간 이산화탄소(CO₂) 누적 배출량이 1.5도 목표를 위해 남아있는 탄소예산에 맞먹는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간 배출을 너무 많이 했다는 뜻인가.
△문: ‘지난 10년간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이 늘고 있다. 이대로 1.5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 한다’가 이번 보고서의 가장 큰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탄소예산’이란 일반적으로 우리가 지출 관리를 위해 잡는 예산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1.5도든, 2도든 목표 달성을 위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총량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 보고서는 ‘1850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순 CO₂ 배출량이 2400±240Gt(기가톤)으로, 1.5도 경로 탄소예산의 5분의 4를 썼다, 우리의 예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후변화 완화’란 이름대로 이번 보고서가 제시한 완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나.
△김용건 박사(김): 온실가스는 대부분 에너지 소비과정에서 나온다. 감축을 위해서는 일차로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에너지 절약 등으로 수요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단순히 에너지 소비를 반으로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도 반으로 줄지 않겠나. 보고서는 수요 관리로만 2050년까지 전체 배출량의 40∼70%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그간 에너지는 쓰고 싶은 만큼 쓰되, 이걸 어떻게 청정한 방법으로 공급할지가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감축량이 턱없이 적다. 이제는 쓰고 싶은 만큼 에너지를 써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중요해졌다.
―이번 보고서는 대안이 잘 작동하기 위한 수단도 중요하게 다뤘다. 기후 관련 법·제도 등 거버넌스와 함께 기후금융이 강조된다.
△정태용 교수(정): 기후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이 돈을 마련하는 방식을 기후금융이라 말한다. 태양광발전소를 짓든, 해수면 상승에 대응해 둑을 높이든 국가·기업·개인이 투자라는 형태로 다양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돈이 없이 사업하려면 은행 대출을, 국제금융이면 차관을 빌릴 수 있고, 어떤 기업은 수출하기 위해 무역보험공사에서 보증받을 수도 있다. 정부가 새로운 펀드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기후 분야 사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 기후금융이다.
―보고서는 기후금융 투자액이 더 커져야 한다고 했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정: 이번 보고서는 각국의 현재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로는 ‘1.5도 제한은 어렵다’고 과학적으로 밝혔다. 2019∼2020년 기후금융 투자액은 적지 않았다. 한 해에 650조원 이상이 세계에서 쓰였다. 그럼에도 앞으로 1.5도 내지는 2도 억제라는 목표를 위해 완화 부문에 ‘3∼6배 돈이 더 필요하겠다’고 보고서는 결론 내렸다. 현재 기후금융은 너무 자국 위주로 투자된다. 선진국이 리스크를 피하려 해 개도국에 자금 지원이 적었다. 전 세계에 돈이 흐르는 데 국내외 제도적 차이로 인한 방해 요인도 많다.
―기후대응이라 하면 온실가스 감축 외에 적응도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둑을 높이는 등의 적응 조치도 필요할 텐데, 2017∼2020년 기후금융의 90∼95%는 완화 부문으로 흘렀다고 한다. 적응 부문에 자금이 잘 흘러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 기후변화 완화가 세계적인 공공성만 목적이 아니다. 정부든 민간이든 투자로 손해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적응은 공공성이 강하다. 그럼 민간이 투자하기보다 대개 관이 하게 된다. 그리고 적응은 문제의 시급성을 따지면 후순위다. 정부가 의사결정할 때 코로나19와 30년 후 온실가스 배출을 논하면,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다. 다만 한국을 포함해 세계가 적응 문제에 인식이 높아졌다. 앞으로 적응 부문 대응도 더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부의 또 다른 온실가스 감축 유인은 배출권거래제다. 실제로 효과적이라고 보나.
△정: 현재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수요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자와 공급자의 힘이 상충하면서 결정된다. 배출권 수요자는 내가 가진 배출권이 미래에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판단하면 이를 팔지 않는다. 반대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제도는 수요자나 공급자의 결정을 제한하는 요소가 있다. 이는 시장의 안정성과 관련된다. 둘째, 시장 참여자가 한정됐다. 우리나라는 전체 배출량의 70∼80%를 배출권거래제로 거래한다. 그런데 실제 유상경매 비중은 3∼4% 정도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국제 거래가 허용됐다. 국내시장은 거래규모도 작고, 수요공급 시장조건도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차차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까지 역외로 배출권 거래 논의 시작될 것이라 본다. 유럽연합(EU)이라는 지역 간 배출권 거래 대표 사례가 이미 있지 않나.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산업 변화로 기존 방식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전환의 위기에 놓인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탄소중립을 위해 기존 산업이 많이 사라지고 새롭게 대체돼야 한다. EU같이 정책이 앞서가는 곳도 ‘공정 전환’이 화두다. 문 닫는 공장과 실업자가 많아지니까 재교육으로 일자리를 찾아주고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돈이 많이 필요하다. 어떤 재원으로 어떻게 지원할지 국가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처럼 탄소에 가격을 부과해 정부가 얻는 재정수입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핵심이다. 보고서도 탄소가격제가 잘 기능하고 정부가 수익을 적절히 쓰면 경제적으로 큰 손해 없이 성장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썼다. 반면에 잘못 쓰면 돈은 돈대로 들어가면서 기업 부담은 가중된다.
―EET(embodied/embedded emission transfer)라는 개념이 나온다. 선진국이 공장을 개도국으로 이전하면서 최근 선진국의 배출량이 줄어들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 개념과 어떻게 연결되나.
△김: EET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체화된 배출량을 뜻한다. 마치 탄소발자국처럼 내재된 배출량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만들어 무역할 때, 화석연료로 만들어진 전기를 쓰며 제품이 유발한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고려하는 개념이다. 중국은 자동차, 컴퓨터 등 많은 제품을 생산해 미국에 수출한다. 그럼 중국 배출량이 지금 10억t이라 해도 EET를 감안하면 8억t으로 줄 수도 있다. 제품의 전 생애주기를 추적해 체화된 배출량을 계산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이긴 하다. 보통 개도국은 적게, 선진국은 높게 나온다. 우리나라는 원래 배출량보다 많을 때도, 적을 때도 있다. 해마다 변동성이 큰 편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6차 보고서에서 꾸준히 지적됐다. 그럼에도 항상 비약적인 기술 발전을 목도해 온 우리는 어느 순간 획기적인 기술적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김: 인류가 상상할 수 없는 발전을 이룬 건 사실이다.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된 동력을 생각해보면, 시장이다. 시장은 좋은 제품을 만든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다시 좋은 제품이 끊임없이 등장하게 했다. 현재 환경문제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사람이 돈 버는 구조가 아니라서 발생한다. 경제적 보상이 없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사람이 ‘대박나는’ 구조를 만들면 어떤 새 기술이 나올지 모른다. 이런 기술자가 돈 벌게 해주는 곳이 탄소시장이다. 선진국은 갈수록 탄소시장을 운영한다. 온실가스를 줄이면 엄청 많은 배출권을 팔 수 있고,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다. 우리나라도 탄소시장이 정상화된다면 ‘대박 기술’이 더 많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김: 과학적 분석에 따른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온실가스,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의 정치화는 피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를 1.5도로 제한하려면 2019년 순 배출량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43%를 줄여야 한다. 8년밖에 남지 않은 기간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코로나19 사태 빼고 단 1%도 배출량을 줄인 적이 없다.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실질적 감축에 더 노력이 필요하다.
△정: 기후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책, 기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돈 세 요소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모든 걸 결정하려 한다. 하향식 구조다. 과연 다양성과 창의성이 발휘돼야 하는 21세기에 적합한 방법일까. 기후위기 대응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기술개발은 민간에서 잘하고, 기후변화 인식을 높이는 행동은 시민사회나 학교가 잘한다. 윤석열정부가 2050년에 온실가스 감축을 평가받지는 않더라도, 5년마다 바뀌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성과를 더해서 국제사회에 결과물을 내 한국이 믿을 만한 나라라고 평가받는 것은 중요하다. 정부 결정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해결책을 내놓는 상향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터뷰 영상은 3회로 나눠 세계일보 유튜브 채널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1회는 QR코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