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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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 외교장관 회의서 사라진 美 존재감… 왜?

블링컨, 美·아세안 회의 주재하느라 G7 놓쳐
의전서열 낮은 국무부 차관이 장관 대신 참여
독일 바이센하우스에서 열린 G7 외교장관 회의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차관, 호셉 보렐 EU 외교정책 대표,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교장관, 루이지 디마이오 이탈리아 외교장관, 리즈 트러스 영국 외교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의전서열상 가장 뒤로 밀린 눌런드 차관이 다른 장관들과 조금 거리를 둔 채 어색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현지시간으로 지난 12∼14일 독일 바이센하우스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외교장관 회의는 대(對)러시아 경제제재 및 우크라이나 군사원조를 주도하는 서방 강대국 대표들이 모여 수시로 다자 및 양자회담을 개최했다. 그런데 정작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존재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불참했기 때문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올해 G7 의장국 독일의 안나레나 배어복 외교장관 주재로 사흘간 열린 G7 외교장관 회의는 1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폐막했다. G7은 성명에서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바꾸려 하는 국경선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러시아를 겨냥해 날을 세웠다. 이어 “크름(크림)반도를 포함해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지지한다”고 우크라이나 편을 들었다. 이번 회의에는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도 특별 게스트 자격으로 참석해 우크라이나 정부 입장을 개진했다.

 

G7 외교장관들이 모두 모인 자리, 또는 2개국 장관만 따로 양자회담을 갖는 자리 등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 국무부가 블링컨 장관 대신 빅토리아 눌런드 정무차관을 참석시켰기 때문이다. 미 정부 중앙부처 중에서도 규모가 특히 큰 국무부는 장관 바로 아래에 ‘2인자’로 부(副)장관을 두고 있으며 차관은 그보다도 더 아래 직급이다. 현재 정무를 담당하는 눌런드 차관 외에도 경제 담당차관, 군비통제 담당차관 공공외교 담당차관 등 차관만 대여섯명이 있을 정도다.

 

자연히 눌런드 차관은 G7 외교장관 회의 내내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장관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는 자리에선 의전서열상 가장 뒤로 밀린 탓에 가장자리를 맴돌았다. 전체 회의에만 출석했을 뿐 타국 외교장관과 따로 양자회담 한 번 갖지 못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며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링컨 장관은 왜 G7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걸까. 같은 시간 미국에서 그 못지않게 중요한 외교행사가 열려 수도 워싱턴을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지난 12∼13일(현지시간) 미·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특별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아세안 회원국 중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는 초청을 받지 못했고 최근 대선을 치른 필리핀은 외교장관을 대신 보낸 가운데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판 민 찐 베트남 총리,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훈 센 캄보디아 총리 등 아시아 정상급 인사만 8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각국 정상들을 상대하는 사이 블링컨 장관도 정상을 수행하고 온 각국 외교장관들와 일일이 양자회담을 갖는 등 무척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의 전략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으로선 아세안 회원국들을 소홀히 대접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아세안 회의 일정을 마무리한 블링컨 장관은 지난 14일 뒤늦게 전용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비록 G7 외교장관 회의는 놓쳤지만 그만큼 중요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회의는 특별히 최근 나토 회원국 가입을 신청한 핀란드 및 스웨덴 외교장관도 함께할 예정이어서 의미가 남다르고 세계 각국 시선도 뜨겁다. 블링컨 장관은 앞선 G7 회의에선 실종됐던 미국의 존재감을 십분 발휘하며 러시아를 향한 나토 회원국들의 전의를 모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