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 그렇게 유배돼 그해 11월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지냈던 곳으로 알려진 인천 강화군 교동도. 우리나라에서 13번째로 큰 섬이자, 바다 건너 북쪽 2~3㎞ 떨어진 곳의 황해남도 연안군(옛 연백군)과 마주한다.
20일 강화군에 따르면 교동도는 과거부터 큰 오동나무가 자생해 붙여진 이름으로 넓은 황금벌판이 장관을 이룬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피란 온 1만여명이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실향민의 땅이기도 하다.
접경지역인 탓에 군사시설보호법, 문화재보호법 등으로 개발이 제한되고 서해·한강·예성강이 만나는 생태계의 보고지만 어로 활동은 어렵다. 최근 지역발전 등으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추진돼 새로운 관광명소로 주목된다.
현지 대룡시장은 황해도 연백군 출신 실향민들이 고향의 연백장을 그대로 본 떠서 만들었다. 시간이 멈춘 듯 1970년대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골목 곳곳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벽화, 조형물, 오래된 간판, 이발소, 잡화점, 신발점, 약방 등과 만날 수 있다.
교동면 상용리 518번지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유년시절을 보낸 집이 있다. 강화군은 예산 13억8000만원을 투입해 부지 2244㎡ 면적에 생가를 복원하고, 녹지공간이 조화를 이룬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박두성 선생은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6점식 한글점자인 훈맹정음을 발표했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식 점자로만 교육해야 하는 현실을 타개코자 했다.
교동읍성은 1629년(인조7년)에 경기수영을 갖추면서 축조한 것이다. 삼도수군통어영의 본진이 주둔한 군사 요새다. 동문·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며 1921년 폭풍우로 무너진 남문 홍예문의 경우 지난해 복원했다.
국내 가장 오래된 향교인 교동향교. 고려 인종 5년(1127년) 창건됐고, 고려 충렬왕 12년(1286)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며 공자상을 들여와 모셨다고 전해진다. 이후 지방의 각 군현에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가 설치됐다. 향교는 국가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현재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린다.
화개산 내 수도권 최고 휴식형 가족공원을 표방하는 화개정원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군 역점사업으로 스카이워크형 전망대, 화개정원, 모노레일(민자)이 들어서게 된다. 강화군 관계자는 “특별함이 있는 교동도는 가족과 함께 가벼운 옷차림으로 떠나기 좋은 곳”이라며 “풍요로운 황금벌판과 아름다운 서해, 구석구석 역사유적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