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남의 이혼 사실’ 전파하면 명예훼손?… 대법 “사회 인식 달라졌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연합뉴스

이혼 경위나 사유 등을 언급하지 않고 타인의 이혼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회 변화에 따라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평가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지역 동장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지인과의 통화 등에서 피해자 B씨에 관한 이혼 사실을 언급해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주민자치위원과의 통화에서 “어제 열린 당산제(마을 제사)에 남편과 이혼한 B씨도 참석해 안 좋게 평가하는 말이 많았다”고 언급했다. 또 주민 7∼8명과의 식사 모임에서도 당산제 관련 대화를 나누던 중 “B씨는 이혼했다는 사람이 왜 당산제에 왔는지 모르겠다”고 발언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에 따르면 당산제는 부산 사상구 지역에서 매년 마을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로, 예전엔 주민 사이에 이혼한 사람 등이 참석하면 부정탄다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누구나 참석하고 있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A씨의 발언 중 ‘왜 당산제에 왔는지’, ‘안 좋게 평가하는 말이 많다’ 등은 B씨의 이혼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더해 부정적인 표현, 이혼한 사람에 대한 비난의 내용 등이 포함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혼 사실을 전파한 것 자체에 대해선 “이혼이나 재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많이 사라진 요즘 사회적 분위기상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2심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의 발언이 의견을 밝힌 것에 불과해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사실을 적시해야 하는데, 원심에서 명예훼손으로 판단한 부분은 B씨의 당산제 참석에 대한 A씨의 부정적인 가치판단에 불과하다는 해석이다. 재판부는 ‘이혼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부분에 대해선 원심과 마찬가지로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으므로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떨어뜨린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이번 판결로 타인의 이혼 사실을 전파하는 것이 모두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새올 법률사무소)는 “사생활 노출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본인이 이혼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면, 불법행위 성립에 대해서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맥락에서 이혼 사실을 언급했는지에 따라 재판부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