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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첫 민생안정대책… 치솟는 물가 잡을 수 있을까 [한강로 경제브리핑]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쓸 수 있는 대부분의 ‘카드’를 빼 들었다. 우선 돼지고기와 밀가루, 대두유 등 14개 수입 품목에 대한 할당 관세를 0%로 낮춘다. 관세를 줄여 수입산이라도 가격을 낮추겠다는 뜻이다. 이 경우 수입 삼겹살 가격이 최대 20%가량 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도 추진되고,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도 연말까지로 연장된다. 이 외에 주거 안정 차원에서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를 2020년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도 내놨다.

 

정부가 물가 잡기와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한 대책을 쏟아부었지만,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기대되는 물가 하락 효과를 0.1%포인트로 내다봤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을 고려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통화당국과의 긴밀한 공조, 추가 대책 마련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가 5%대 진입 앞뒀는데…기대효과 0.1%P↓인 민생안정대책

 

정부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은 민생안정대책을 확정했다. 추 부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글로벌 에너지·식량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서민 체감물가·민생경제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에 정부가 총 3조1000억원 규모의 민생안정대책을 긴급히 마련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생활·밥상 물가 안정, 생계비 부담 경감, 중산·서민층의 주거 안정 등 세 가지 분야에서 총 10가지 민생안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물가를 잡기 위한 대책이 총망라됐다. 할당 관세와 부가가치세(부가세) 면제 등 수입품의 원가 상승 압박을 줄여 궁극적으로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는 목표다. 

3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수입산 돼지고기. 연합뉴스

최근 가격이 급등해 서민들 살림살이를 힘겹게 하는 돼지고기와 식용유(대두유·해바라기씨유), 밀·밀가루, 계란 가공품 등 식품원료 7종에 대해서는 연말까지 할당 관세 0%를 적용하기로 했다. 세금을 없앤 만큼 가격 인하 효과를 볼 수 있다. 커피·코코아 원두 수입 때 붙는 부가세도 2023년까지 면제된다.

 

또 정부는 통신비 부담 완화를 위해 5세대 이동통신(5G) 중간요금제 출시를 3분기부터 유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금리 인상에 따른 학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올해 2학기 학자금대출 금리를 지난 1학기 수준의 저금리(1.7%)로 동결하고, 승용차 구매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재 적용 중인 개별소비세 30% 인하 혜택을 올해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 완화를 위한 대책도 마련됐다. 고금리·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저금리·고정금리로 갈아타게 해주는 안심전환대출을 20조원 규모로 마련했다. 아울러 취업준비 청년·대학생 등 대상 저금리 소액대출 지원규모가 1000억원까지 확대된다. 이 대출은 만 34세 이하 대학생·미취업청년, 연 소득 3500만원 이하인 경우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조치가 모두 시행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 끌어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조만간 5%대 물가상승률이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에서 이번 대책으로 체감물가가 낮아지기는 역부족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한은은 전날 국회가 처리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이 물가를 0.1%포인트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정부의 대책은 추경으로 올려놓은 물가상승률을 다시 되돌리는 수준에 그치게 된 셈이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뉴스1

◆중산층·서민 주거 안정 대책은…1주택 실수요자 세금·대출 규제 완화에 초점

 

30일 발표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보면 정부는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공시가격 급등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1가구 1주택자에 한해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해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재산세의 경우,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더라도 대다수의 1가구 1주택자는 2020년보다 세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1가구 1주택자가 보유한 공시가 9억원 이하 주택의 재산세율을 구간별로 0.05%포인트 인하하는 특례가 지난해부터 시행 중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1주택자의 약 91%에 달하는 6억원 이하 주택(896만호)의 경우 올해 재산세 부담이 2020년보다 내려갈 것으로 추산했다.

 

종합부동산세는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면서 현재 100%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내리는 방식으로 세 부담을 2020년 수준까지 낮추기로 했다. 정부는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은 종부세 부과 고지(11월) 전 조정폭을 확정해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공동주택 공시가를 2030년까지 시세의 90% 수준으로 인상하는 내용의 문재인정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재검토하기로 했다. 연구용역을 통해 수정된 현실화 계획은 내년도 공시가격 공시분부터 적용된다.

지난 26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창구 모습. 뉴스1

아울러 정부는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에서 일시적으로 주택 2채를 보유하게 된 2주택자에 대해서는 취득세 중과 배제를 위한 주택 처분 기한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올해 3분기부터 생애 최초로 구매하는 주택에 대해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60∼70% 수준에서 80%로 완화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5억원짜리 아파트를 처음 산다면 기존에는 LTV 60%를 적용받아 3억원을 대출할 수 있었지만 3분기부터는 LTV가 80%까지 적용돼 4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해진다.

 

또 청년층이 대출할 때 미래소득이 정확히 반영될 수 있도록 ‘DSR 미래소득 반영 가이드라인’을 개선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오는 8월에는 청년·신혼부부 대상 최대 50년 초장기 모기지도 도입한다. ‘임대차 3법’ 시행 2주년을 앞두고 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는 임대차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전·월세 대책은 국토교통부가 다음 달 발표한다.

 

◆글로벌 금융시장 위협하는 물가상승…“금융시스템 최대 리스크”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최악으로 꼽힐 정도의 역대급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빠르게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금융권의 국내외 전문가들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현 금융시스템의 최대 위험 요소로 꼽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통화신용정책 등 정책적 노력을 주문했다.

사진=연합뉴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현지시간)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최근 20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자체 분석을 통해 각국 중앙은행이 지난 3개월간 최소 60회 이상 금리를 인상했다며 이는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횟수라고 전했다. 최근 기준금리를 인상한 나라는 최소 55개국에 달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지난 26일 금리를 0.25%포인트(1.50%→1.75%) 인상하며 지난해 8월 이후 약 9개월 만에 기준금리가 1.25%포인트 올랐다. 올해 말까지 또 0.75%포인트 올라 기준금리가 2.5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짙어지고 있다.

 

국내외 금융기관 종사자들도 물가상승 압력을 금융시스템의 최대 위협으로 꼽고 있다. 한은이 30일 공개한 올해 상반기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에 따르면 금융기관 종사자(국내외 금융기관 담당자 및 금융상품 리서치 담당자, 금융 관련 협회·연구소 직원, 대학교수 등 80명)의 34.2%가 금융시스템 1순위 리스크 요인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 및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을 지목했다. 2, 3순위 위험 요소로는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15.2%), 높은 가계 부채 수준(11.4%)이 각각 꼽혔다.

 

조사 참가자들은 물가상승 압력,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시장금리 급등,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을 단기(1년 내 현재화 가능성) 요인으로 분류했다.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은 중기(1∼3년) 요인으로 거론됐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물가 안정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 △기대인플레이션 낮추기 등이 시급한 과제라고 응답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