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1일 전국 곳곳 투표소에서는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농번기라 바쁜 농민들은 일손을 잠시 멈추고 투표소를 찾았고, 섬마을 주민들도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와 투표에 참여했다.
◆산 넘고, 물 건너 ‘한 표’ 행사
강원 화천군 화천읍 동촌1리 4반 주민 이우석(80)·박순이(78)씨 부부는 뱃길을 건너 한 표를 행사했다. 이 마을은 1940년 화천댐 건설과 함께 육로가 막혀 ‘내륙의 섬’이 됐다. 이씨 부부는 30여분간 배를 타고 화천읍 구만리 파로호 선착장에 도착한 뒤, 화천군선거관리위원회가 지원한 차량을 타고 10여분간 비포장 길을 지나 풍산초등학교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쳤다. 이씨는 “건강이 좋지 않지만 투표는 당연히 해야 될 일이기에 나오게 됐다”며 “국민들이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은 만큼 모든 당선자들이 지역 발전을 위한 진정한 일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청호 연안마을인 충북 옥천군 옥천읍 오대리 주민들도 배를 타고 대청호를 건너 투표했다. 이 마을은 1980년 대청댐이 건설된 뒤 험한 산과 호수에 둘러싸여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린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넌 주민들은 차량 두 대에 나눠 타고 대청호에서 약 3㎞ 떨어진 옥천읍 제2투표소가 마련된 죽향초등학교를 찾아 투표를 마쳤다.
전남 신안군의 작은 섬에 사는 유권자들도 선박을 이용해 투표소로 향했다. 선관위는 주민들의 원활한 투표 참여를 위해 신안군이 운영하는 유도선 등을 임대해 지원했다.
강원 양양군 설악산 대청봉 인근 중청대피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해발 1708m를 내려와 투표권을 행사했다. 중청대피소에선 9명이 3개 조로 나눠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이날 휴무인 직원들은 하산 후 투표를 마쳤다.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최북단 섬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투표 행렬이 이어졌다. 서해5도 등 100여개 섬으로만 이뤄진 옹진군은 애향심이 높은 고령 인구가 많고,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어 선거에서 늘 투표 열기가 뜨거운 곳이다. 백령도의 한 50대 주민은 “섬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여객선 정책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 있는 경기 파주시 대성동 마을과 통일촌, 해마루촌 주민들은 농번기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 투표소를 찾았다. 해마루촌 홍정식 이장은 “논에 물을 대야 해 일을 마무리한 뒤 투표를 하러 왔다”며 “접경지 주민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남북관계도 좋아지고, 나라가 시끄러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고령자 지팡이 짚고 투표, 일부 투표장에서는 소란도
옥천군 최고령 유권자인 이용금(118) 할머니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1904년생인 이 할머니는 딸과 함께 청산면 삼방리 마을회관 투표소를 찾아 투표했다.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였다. 이 할머니는 3월 대통령 선거, 2020년 6월 국회의원 선거, 2018년 6·13 지방선거 때도 참정권을 행사했다. 이 할머니는 “투표에 참여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 “건강이 허락한다면 투표는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울산에서도 281개의 투표소에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남구 선암동 제4투표소가 마련된 삼일여자고등학교에는 투표가 시작된 이른 아침부터 유권자들이 찾았다. 이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받은 투표용지는 7장이 아닌 5장이었다. 남구의원과 비례대표 남구의원이 정수 2명에 후보 2명이 출마, 무투표 당선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무투표 선거구는 투표용지가 지급되지 않는다. 유치원생 자녀와 함께 투표장을 찾은 30대 부부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교육감 선거에도 관심이 가더라”며 “울산의 교육환경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기표가 안 된 투표용지가 기표소에서 여러 장 발견되는 등 소란이 일었다.
경찰과 선관위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42분쯤 경기 의정부 제일시장 투표소의 기표소 안에서 투표용지 5장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은 해당 사안을 선관위에 통보했다.
경기 고양시에서는 오전 10시35분쯤 능곡동 행정복지센터 투표소에서 한 남성 유권자가 투표 방법을 제대로 안내해 주지 않는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소란을 피워 경찰이 출동했다.
고양시 덕양구 행신2동 투표소에서는 비례 시의원 투표용지가 투표인에게 1부 더 배부되기도 했다.
부산시 해운대구 좌1동 제2투표소에서는 90대 남성이 80대 부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다 선관위 직원으로부터 제지를 받자 반발해 집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발생했다. 앞서 부산 기장군 기장읍 제3투표소에서도 90대 모친과 함께 투표하러 온 60대 남성이 모친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다 선관위 직원으로부터 제지당하자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는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7시30분까지 투표가 가능했지만 이 시간대 전국 투표소는 한산했다. 대부분 투표소엔 5명 내외의 확진자만이 다녀갔다. 부산시 진구 전포1동 4투표소와 광주시 서구 치평동 계수초등학교 투표소, 대구시 서구 비산1동 제3·4 투표소 등엔 단 한 명의 확진자도 방문하지 않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투표 인증샷’이 잇따랐다. 투표소 입구를 배경으로 하거나, 손등에 기표도장을 찍은 사진으로 투표를 마쳤음을 인증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손등 대신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만화 캐릭터의 ‘포토카드’에 도장을 찍는 유행도 눈에 띄었다. 다른 선거에 비해 저조한 투표율에 투표를 독려하는 게시물도 자주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