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에 이어 6·1 지방선거까지 참패로 막을 내리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새로운 길 모색에 나섰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2일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안고 총사퇴했다. 각 지역에서 나온 결과에 충격을 받은 의원들은 말을 잃었으나 예고된 당내 계파 갈등 탓에 당은 폭풍전야 상태로 보인다. 일각에선 ‘이재명 책임론’ 등이 불거지는 등 포스트 지방선거 체제를 놓고 음지에서는 숨 가쁘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3일 오후 2시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를 소집해 당의 향후 진로를 논의하기로 했다.
윤호중·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 등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비공개회의를 마친 뒤 “지지해 주신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사죄드린다”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민주당은 대선·지방선거를 평가하고 당을 이끌어 갈 새 지도부는 의원총회와 당무위, 중앙위원회를 거쳐 구성하기로 했다. 새 지도부 선출 전까지는 박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는다.
예정대로라면 민주당은 오는 8월 전당대회를 열고 당대표 등 새 지도부를 선출해야 한다. 하지만 지방선거 대패로 인해 비대위가 물러나면서 당분간 당내 혼란이 지속할 전망이다. 특히 ‘친문’(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 진영에서는 또 다른 ‘혁신 비대위’가 꾸려져야 한다는 주장과 동시에 ‘이재명 책임론’을 꺼냈다. 이재명 의원이 비록 보궐선거에서는 이겼지만, 후보로서 대선 패배의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고,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지방선거를 지휘했는데도 다른 광역단체장 선거 참패를 막아 내지 못해서다. 반면 이재명계에선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선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친문 성향의 신동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지도부와 이 의원, 송영길 전 서울시장 후보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숱한 우려와 반대에도 ‘당의 요구’로 포장해 송 전 후보와 이 의원을 ‘품앗이’ 공천했다”고 비판했다. 차기 당권을 준비 중인 친문 홍영표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사욕과 선동으로 사당화한 정치의 참담한 패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선 이후 ‘졌지만 잘 싸웠다’는 해괴한 평가 속에 오만과 착각이 당에 유령처럼 떠돌았다. 당원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웅변했다. 윤영찬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밀어붙인 검찰개혁, 송 전 후보의 난데없는 서울시장 출마, 서울 종로 보궐선거 당시 무공천 원칙을 스스로 깨 버린 이 의원의 인천 계양 공천, 쇄신을 둘러싼 비대위의 난맥상이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재선의 친문 의원은 통화에서 “당대표를 빨리 다시 뽑자는 주장이 있는데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전당대회를 하면 안 된다. 대신 ‘혁신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이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강행하면 지지하는 권리당원 숫자가 많아 당선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아예 전당대회를 한참 뒤로 미루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세워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특히 광주 투표율 37.7%는 현재의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었다”며 “민주당이 그동안 미루고 뭉개며 쌓아 둔 숙제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만큼 무거워졌다”고 엄중히 꾸짖는 등 현안 관련 언급이 조금씩 늘고 있다.
반면 이 의원 측근 인사들은 이날 말을 아꼈다.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어쨌든 인천 계양에서 당선이 됐고, 경기도지사 선거도 우여곡절 끝에 승리한 만큼 당대표에 나설 명분이 아예 없지는 않다”며 “당원과 국민들이 윤석열 정권에 맞설 수 있도록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를 살린 것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파격적인 외부 비대위원장 영입이 아닌 이상 흔들리는 당의 중심을 잡으려면 이 의원이 구심점이 돼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선 참패 후 당내 계파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가운데 중립 지대에 있는 의원들은 “계파주의를 집어던지자”고 촉구했다. 이상민 의원은 “패거리 동맹에 무조건 비호하고 거기에 끼지 못하면 무작정 적대하는 습성과 행태를 내버리자”고 강조했다. 박 전 비대위원장도 사퇴하면서 “소수 강성 당원들의 언어폭력에 굴복하는 정당이 아니라 말 없는 국민 다수의 소리에 응답하는 대중정당을 기대한다”고 호소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통화에서 “강성 지지층에 기대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이 있다”며 “그 사람들 발언이 민주당 내부에서 과대 대표된다. 중도층 민심만 잘 따라가면 잘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