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 불어닥친 6·1 지방선거 참패 후폭풍이 한층 거세지고 있다. 패배 책임을 둘러싼 내부 충돌이 차기 당권 싸움으로 번지며 묵은 계파 갈등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설상가상 리더십 공백 사태까지 맞물리면서 일촉즉발의 내전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친문(친문재인) 의원들은 지방선거 완패의 책임자로,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목하며 대대적 공세에 나서고 있다.
소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프레임을 동원해 지방선거 전면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았다는 주장이다.
친문 핵심인 홍영표 의원은 3일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거 결과에 대해 "민주당의 잘못된 공천을 심판한 것"이라며 "(이 고문은 대선 때 자신을 지지했던) 1천614만명이 뭉쳐서 도와줄 것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가졌다"고 비판했다.
김종민 의원도 라디오에 나와 "민주당으로서는 참사였다. 이재명, 송영길 두 분이 대선 한 달 만에 출마한 게 결정적이었다"며 "이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였다"고 비난했다.
이날 오후 비상 의원총회 성격으로 열린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도 범친문계를 중심으로 '이재명 책임론'이 분출됐다.
이낙연계인 설훈 의원은 연석회의에서 "이 고문이 이낙연 전 대표를 찾아가서 '당을 살리자, 도와달라'고 삼고초려했으면, 선거에서 이기기는 힘들었어도 구청장 자리는 더 건졌을 것이다. 판단 착오인지 자만인지 모르겠지만 이 고문은 그렇게 안 했다"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계 핵심인 정성호 의원은 연석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 있었다. 토론할 분위기가 되질 않아 싸울 일도 없었다"고 했다.
연석회의는 총 4시간가량 진행됐으며 발언대에는 30명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이 회의에서 민주당은 다음 주 안으로 '혁신형 비대위'를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친문 의원들은 이 고문의 원내 입성을 통한 당권 장악 시나리오를 차단하는 데도 부심하는 분위기다.
지난 대선을 전후해 사실상 뒤로 물러나 있던 친문 세력이 차기 헤게모니 경쟁에서만큼은 밀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으로 해석된다. 차기 당 대표가 2년 뒤 총선 공천권을 사실상 쥐기 때문이다.
홍 의원은 이 고문의 오는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대해 "상식적인 판단을 할 것으로 본다. 이런 분들(이 고문 측 인사들)은 이 고문 말고 민주당을 개혁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시각을 가진 것 같다"고 날을 세웠다.
김 의원도 "또 당의 전면에 나선다? 그러면 민주당은 국민들한테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이 고문을 견제했다.
다른 친문계 의원은 "이 고문이 전대에 출마하는 순간 당이 쪼개질 수 있다. 전쟁 선포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 고문은 물론 이재명계 의원들은 이틀째 공개 발언을 삼가며 '로키' 행보를 이어갔다.
전날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당선증을 받은 이 고문은 이날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단은 자숙하는 모양새가 낫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 고문의 측근인 한 수도권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친문을 중심으로 불만들이 많이 터져 나오는 것 같은데 예상한 결과이기도 하다"며 "당장 우리 쪽 의원들끼리 집단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어쨌거나 당원과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부름이 있다면 이 고문이 당 전면에 나서 개혁과 혁신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강경 초선 모임인 처럼회 소속 이수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송영길을 대신할 인물이 있었습니까? 이재명을 불러낸 게 누구입니까? 당원들이 요청했고, 당이 결정한 것이다", "특정인을 겨냥한 마녀사냥을 하려는 의원들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민주당을 향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결코 아니다"라며 이 고문을 엄호했다.
확산일로인 내홍 사태를 서둘러 수습해야 한다는 내부 경고음도 서서히 커지고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출구 없는 내홍으로 가다가는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당이 '폭망'할 것"이라며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객관적인 평가"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복당을 검토 중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페이스북에서 "2연패한 민주당이 내부 총질에 혼연일체가 돼 있다"며 "진보는 싸우고 백서를 내면서 전열을 정비한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패배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오래 싸우진 마세요"라고 했다.
범친문계로 묶이는 이낙연계와 정세균계는 "계파 정치를 없애자"며 이날 나란히 각각의 의원모임을 해체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마저 패한 위기 상황에서 당의 분열을 가속할 수 있는 일절 집단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마저도 이 고문의 당권행을 앞두고 친명계의 사전 세력 확대를 막으려는 범친문계의 견제구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계파갈등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신현영 의원은 이날 연석회의 후 브리핑에서 "계파 논쟁이나 당내 갈등은 결코 옳지 않다는 데 공감대가 있었다. 내부 반성부터 시작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며 당내 갈등의 노출 차단에 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