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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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역습’ 준비해야… 전 세계 ‘빅스텝’ 금리 인상 물결 [뉴스+]

우크라전·코로나·인플레 등 변수작용
“많은 나라, 경기침체 피하기 어려워”
미국·캐나다 등 0.5%p 금리 대폭인상
한은, 물가 상승 우려에 ‘빅스텝’ 논의
한국 가계 부채 GDP 대비 세계 1위
지난 6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광고 안내판.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정부의 확장정책과 ‘빚투(빚을 내서 투자한다)’ 열풍이 맞물려 가계 대출이 증가한 가운데 최근 높은 이자 부담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본격적으로 금리 인상을 시작하며 돈줄을 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기침체 우려까지 겹치자, 전문가들은 각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며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세계은행, 세계성장률 2.9%로 대폭 하향

 

세계은행(WB)은 7일(현지시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며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물가상승과 실직, 경기 후퇴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WB가 이날 내놓은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 경제는 2.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WB가 예상한 올해 성장률 4.1%과 비교하면 5개월새 1.2%포인트나 하락한 수치다. 앞서 데이비드 맬패스 WB 총재가 지난 4월에 전망치를 3.2%로 수정한다고 밝힌 것과 비교해서도 더 떨어진 것이다. 내년과 2024년 성장률은 각각 3.0%로 전망됐다. WB의 작년 경제성장률 추정치는 5.7%였다.

 

이같은 전망은 전염병 대유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플레이션 등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WB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봉쇄, 공급망 교란,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성장을 해치고 있다”며 “많은 나라에서 경기침체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결과로 올해 개발도상국의 1인당 소득은 전염병 대유행 이전과 비교하면 5%포인트 낮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세계은행 본부 외경. 신화연합뉴스

WB는 “세계 경제가 미약한 성장과 높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는 시기로 접어들 수 있다”면서 “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높인다”고 우려했다. 경기침체 속에서도 물가가 지속해서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1970년대 오일쇼크 때가 대표적인 사례다. 맬패스 총재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세계 경제의 성장 속도가 2.7%포인트 둔화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이는 1976년부터 1979년까지 나타났던 침체 속도의 2배를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국 중앙은행 ‘빅스텝’…공격적 금리 인상 분위기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시중에 늘어난 통화량으로 인해 최근 물가가 치솟자 각국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크게 높이는 ‘빅스텝’을 밟고 있다.

 

캐나다, 뉴질랜드, 멕시코 등의 중앙은행들은 최근 한 달 사이 통상적인 기준금리 인상 폭의 두 배에 달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캐나다 중앙은행인 캐나다은행은 지난 1일 기준금리를 1.5%로 0.5%포인트 올렸다. 4월에 이어 두 차례 연속 빅스텝 인상이었다. 캐나다은행은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더 강력하게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며 추가 인상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에는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다. 역시 2회 연속 인상 행보였다. 4월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은 RBNZ가 22년 만에 단행한 빅스텝 인상이었다. RBNZ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목표 범위 내로 낮추는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기로 합의했다”며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청사. EPA연합뉴스

멕시코 중앙은행은 지난달 12일 기준금리를 기존 6.5%에서 7%로 0.5%포인트 올렸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물가상승을 억제하려고 이미 지난해 말부터 계속 0.5%포인트씩 인상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멕시코 중앙은행 의사록에선 0.75%포인트 인상이라는 ‘자이언트 스텝’ 필요성까지 제기됐다.

 

지난달 4일 22년 만에 최대폭인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6월과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0.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향후 두어 번 회의에서 빅스텝 인상을 시사한 데 이어 “물가상승률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내려가는 것을 볼 때까지 우리는 계속 (금리 인상을) 밀어붙일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6월 회의에서 빅스텝 인상을 할 확률은 99.3%, 7월에도 재차 할 확률은 89.5%로 집계됐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유럽에서도 금리 인상 바람이 불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달 23일 금리 인상 불씨를 댕긴 이후 ECB 위원 간 인상 폭을 둘러싼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라가르드 총재는 당시 ECB 홈페이지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기준금리의 일종인 예금금리가 마이너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밝혀 7월과 9월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이후 ECB 위원인 로베르트 홀츠만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가 7월 0.5%포인트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마르틴스 카작스 라트비아 중앙은행 총재도 0.5%포인트 인상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도 ‘빅스텝’ 기조에 동참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빅스텝 인상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가 “앞으로 수개월 간 물가를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이라며 추가 인상을 시사함에 따라 국내외에선 한은이 연말에 기준금리를 2.5%까지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부상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남은 4차례 금통위 회의에서 3번 0.25%포인트 인상하거나 빅스텝을 통해 금리를 빠르게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가계 빚 GDP 대비 세계 1위…이자 부담 어쩌나

 

우리나라의 가계 빚(부채)은 국가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세계 36개 주요국(유로지역은 단일 통계) 가운데 가장 많다. 기업 부채의 경우는 증가 속도가 세계 2위에 오를 만큼 빨라졌다. 금리 인상 폭이 커지면 민간(가계+기업) 부채 위험은 물가와 더불어 또 다른 악재가 될 전망이다.

 

6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세계 36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4.3%로 가장 높았다. 이어 레바논(97.8%), 홍콩(95.3%), 태국(89.7%), 영국(83.9%), 미국(76.1%), 말레이시아(72.8%), 중국(62.1%), 일본(59.7%), 유로 지역(59.6%)이 10위 안에 들었다.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가계 부채가 경제 규모(GDP)를 웃도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1년 전인 작년 1분기와 비교하면, 한국의 가계 부채 비율은 105.0%에서 104.3%로 0.7%포인트 낮아졌다. 하지만 한국의 하락 폭은 영국(7.2%포인트), 미국(4.7%포인트), 일본(4.6%포인트), 유로지역(2.9%포인트) 등과 비교해 뚜렷하게 작다.

 

경제 규모를 고려한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 비율이나 증가 속도도 최상위권이었다. GDP 대비 한국 비금융기업의 부채 비율은 1분기 현재 116.8%로 홍콩(281.6%), 레바논(223.6%), 싱가포르(163.7%), 중국(156.6%), 베트남(140.2%), 일본(118.7%)에 이어 일곱 번째로 높았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 비율은 1년 사이 5.5%포인트(111.3→116.8%)나 뛰었는데, 이런 상승 폭은 베트남(129.3→140.2%·+10.9%포인트)에 이어 36개국 가운데 두 번째로 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

반면 정부 부문 부채의 GDP 대비 비율(44.6%)은 25위, 1년간 정부 부채 비율 증가 속도(45.8→44.6%·-1.2%포인트)는 15위로 중위권이었다. 경제 규모와 비교해 정부 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248.7%)이었고, 부채증가 속도는 레바논(186.6→202.2%·15.6%포인트), 태국(47.4→53.7%·6.3%포인트)이 1, 2위를 차지했다.

 

IIF는 보고서에서 “GDP 대비 세계(조사대상국 전체) 부채(가계+기업+정부+금융부문) 비율은 약 348%로, 2021년 1분기 정점보다 15%포인트 정도 낮아졌고 특히 EU국가들에서 큰 개선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한국, 베트남, 태국 등은 (자국 기준으로) 최대 증가 기록을 세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경제 규모를 웃도는 가계 대출의 증가세가 뚜렷하게 꺾이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금리까지 계속 뛰면, 대출 부실과 같은 금융시스템 위험은 물론 이자 부담 등으로 소비까지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4월21일 취임사에서부터 “부채의 지속적 확대가 자칫 붕괴로 이어지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과거 경험으로 알고 있다”며 “거시경제 안정을 추구하는 한은은 부채 연착륙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4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 회의에서도 한 금통위원은 “작년 하반기 이후 가계 대출 증가세와 주택가격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지만, 경계를 늦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동안의 레버리지(차입투자) 누적으로 소득 대비 가계부채·주택가격 비율이 여전히 주요국이나 장기추세보다 높은 데다,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최근 금융기관의 대출 태도가 다소 완화되고 주택가격 기대도 하락세를 멈추는 등 불안 요인이 상존한다”고 경고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