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곡물 가격의 오름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평균 가격이 10년여 만에 최고 가격을 기록했고, 주요 곡물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여기에 미국 통화당국의 긴축 기조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겹치는 ‘3고’ 현상이 더욱 짙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세계은행이 1970년대 발생한 오일 쇼크 상황과 비교하며 세계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등 한국 경제의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잔뜩 끼고 있다.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 위기가 아닌 이른바 ‘퍼펙트스톰’(총체적 복합위기)에 해당하는 상황을 윤석열정부가 헤쳐 나가야 하는 셈이다. 경제계 안팎에선 정부가 단기적으로 통화당국과의 절묘한 정책 조합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기를 회복시키는 가운데 규제개혁,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을 통해 잠재 성장률을 제고하며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30분 기준 전국 휘발유 판매 가격은 전날 대비 7.80원 오른 리터당 2064.59원을 기록했다. 2012년 4월18일 2062.55원을 기록한 이후 10년2개월 만에 최고치다. 같은 시각 전국 경유 판매가격도 전날보다 9.16원 오른 리터당 2063.53원을 나타냈다. 국내 경유 가격은 지난달 12일 1953.29원을 기록하며 기존 최고가(2008년 7월16일 10947.74원)를 경신했다. 이어 지난달 24일 2093원으로 사상 처음 2000원 선을 넘은 데 이어 매일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에너지 외 곡물 분야도 마찬가지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조사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 100 기준)는 5월 157.4포인트로 1년 전보다 22.9% 올랐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3월(159.7)보다는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는 국내 물가 전반에 영향을 주면서 파급 효과를 키우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를 기록, 2008년 8월(5.6%) 이후 13년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다. 석유류 및 가공식품을 포함한 공업제품이 8.3% 오르면서 전체 물가를 2.86%포인트 끌어올렸고, 외식비를 포함한 개인서비스도 5.1% 오르면서 전체 물가를 1.57%포인트 밀어 올렸다.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대외 악재 탓에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파장으로 러시아산 석유제품에 대한 세계 각국의 제재로 수급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의 도시 봉쇄 조치 완화 등으로 수요는 늘면서 유가 고공행진은 꺾이지 않고 있다. 또 곡물 시장 역시 대외적으로 주요 농산물 생산국이 식량 안보를 내세워 밀(인도)과 팜유(인도네시아) 등의 해외 반출을 막고 있고, 대내적으로는 올해 1~5월 강수량(160.7㎜)이 평년(310㎜)의 절반가량에 그치는 등 가뭄 현상으로 농산물 수급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생활물가 안정을 위해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지만 결국 가장 확실한 효과는 금리인상이다. 실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9일 “글로벌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이 다시금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당국이 오는 7, 8월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속 인상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 셈이다.
여기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가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0.75%포인트까지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발표된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CPI) 지수가 예상치(8.3%)보다 높은 8.6%로 급등한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미국의 이런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우리 외환시장에 ‘고환율’(원화 가치 하락)을 불러 오고, 이는 수입물가 가격 상승 등 각종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한층 짙어진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현상에 더해 세계 경제가 침체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도 우리 경제엔 부담이다. 지난 7일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 4.1%에서 2.9%로 낮추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은행은 특히 석유 공급 제한으로 경기가 침체되는 가운데 물가가 치솟는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상황을 빗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세계경제의 침체는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계 안팎에선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놓으면서 정부가 적절한 내수 진작을 통해 경기 회복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저성장, 고물가 함정에 빠진 한국 경제-최근 경제 동향과 경기 판단’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경제정책의 목표를 ‘경제성장률 제고’와 ‘물가 안정’에 모두 두어야 하는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연구원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공조 노력이 없을 경우 실물 경기 변동 폭이 확대되거나 고물가가 상당 기간 지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면서 “경제 부처 간 정책의 기간 구조와 정책 수단의 강도 조절 등의 긴밀한 ‘정책공조’가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즉, 물가상승률이 정점일 때는 금리인상의 강도를 높이되 재정정책은 손실보상 등 시장수요를 자극하지 않게 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될 때는 금리 인상 속도를 낮추고 경기 진작책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런 위기 상황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규제를 없애고 구조 개혁 등에 나서 경제 체질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신산업정책을 통해 반도체인력 양성과 연구소지원 등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는 교육체제 및 정부 연구소체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고, 신성장동력 육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