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면서 인플레이션 공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1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91.36포인트(3.52%)나 하락한 2504.51에 마감, 2500선만 가까스로 사수했다.
지난달 12일 기록한 기존 연저점(2546.80)을 뚫었다. 종가 기준으로는 2020년 11월13일(2493.97) 이후 1년7개월만의 최저치다. 낙폭도 2020년 8월20일(-3.66%) 이후 최대다.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1.09포인트(4.72%) 내린 828.77에 마감해 종가 기준 2020년 8월3일(827.57) 이후 약 1년10개월 만의 최저점이었다. 아시아 주식시장도 무너졌다.
‘블랙 먼데이’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 이날 폭락은 지난 10일 미국 CPI가 1981년 12월 이후 최대폭인 8.6%(전년 동월 대비) 치솟았다는 발표에서 촉발했다. ‘CPI쇼크’로 뉴욕 증시는 다우지수가 2.73% 하락하는 등 곧바로 영향을 받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퍼졌다.
하루 동안 코스피 시가총액은 약 71조원, 코스닥 시가총액은 약 17조원이 각각 감소해 증시에서 총 88조원이 증발했다. 코스피 상장 종목 932개 중 881개가, 코스닥 상장 종목 중 1479개 중 1388개가 하락했다. 코스피 147개 종목, 코스닥 297개 종목은 52주 신저가를 갈아치웠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CPI가 급등한 데다 미국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가 상당히 낮게 나오면서 ‘경기침체’ 이슈로 자극했다”며 “주말에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처음으로 1갤런(3.78ℓ)당 5달러를 넘어섰다는 소식이 아시아 시장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켰다”고 진단했다.
코스피뿐 아니라 아시아 증시도 파랗게 질렸다. 니케이225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3.01% 떨어졌고, 홍콩 항셍(-3.39%), 대만 가권(-2.36%)도 하락했다. 상하이지수도 0.89% 빠졌다. 아시아 증시에 이어 열린 유럽 증시도 프랑스CAC 40 지수가 현지시간 오전 10시49분 기준 2.22% 하락하며 출발하는 등 약세장을 보였다.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달러는 강세를 나타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284원으로 마감하며 전 거래일 대비 15.1원 상승, 한 달여 만에 다시 1280원선을 넘었다. 시장에서는 ‘1290원을 넘는 것이 임박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원화 가치 급락에 외환 당국은 “필요하면 관계 기관 공조 하에 즉시 시장안정조치를 가동하겠다”며 구두 개입에 나섰다.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514%로 마감하며 2012년 4월 이후 10년여 만에 3.5% 선을 뛰어넘었다. 미국 달러 대비 일본의 엔화 가치도 하락을 거듭해 한때 135.22엔까지 떨어졌다.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저치였다.
당초 시장은 오는 14∼15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준이 ‘빅 스텝’(한 번에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CPI쇼크로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기침체 가능성도 커졌다는 지적이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물가가 저렇게 통제가 안 되고 치솟으면 기업들의 ‘아웃풋(이익)’도 작아지게 된다”며 “흔히 말하는 경기둔화를 넘어 일시적으로 경기침체로 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편 가상화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이날 오후 10시 기준 하루 사이 각각 13%, 16% 이상 하락했고 전체 가상화폐의 시가총액도 1년5개월 만에 1조달러(약 1288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물가 정점 아직 멀었다”… 美 연준 ‘자이언트스텝’ 고개
“(미국 노동부의) 인플레이션 보고서는 백악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투자자들에게 원치 않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뉴욕타임스(NYT)의 표현대로 지난 10일(현지시간) 노동부가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충격을 던졌다. 인플레이션이 지난 3월 정점을 찍고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13일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의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면서 연준이 14∼15일에 있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준은 지난달 4일 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0.25∼0.5%인 기준금리를 0.75~1.0% 수준으로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연준은 통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려왔는데 0.5%포인트를 인상한 것은 2000년 이후 22년 만이다. 연준은 향후 두세 차례 추가 빅스텝을 예고하며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예고했지만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연준은 14∼15일 FOMC를 통해 예고대로 빅스텝을 밟을지, 자이언트스텝으로 강력 대응에 나설지가 최대 관심사다.
이번 회의에서는 먼저 0.5%포인트 인상을 발표한 뒤 향후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열어 둘 것이라는 관측이 일단 대세다. 고강도 긴축 정책이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분석가들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예상보다 더 큰 0.75%포인트의 금리 인상으로 시장을 놀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올해 연준이 정책을 수행한 방향과는 크게 달라 그런 움직임은 가능성이 작다”고 전망했다.
FOMC 위원들이 향후 금리 전망을 보여 주는 점도표를 통해 올해 말 금리 수준을 어떻게 전망할지도 주목된다. FOMC 위원들은 직전 3월 점도표에서 올해 말 금리 수준을 1.875%로 전망했는데 이번 회의에서는 이를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FOMC가 6월, 7월, 9월에 각각 0.5%포인트씩 연달아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상황에 따라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열려 있는 만큼 현재 0.75∼1.0%인 기준금리가 올해 말 3.0%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5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8.6% 상승했다. 이는 1981년 12월(8.9%) 이후 41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지난 3월 CPI 상승률이 8.5%를 기록하면서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4월 CPI가 8.3% 상승을 기록할 때만 해도 CPI가 완만한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5월 CPI 상승률은 3월 상승폭을 뛰어넘고, 시장 전망치(8.3%)도 훌쩍 넘기면서 인플레이션 공포는 더욱 확산하는 흐름이다.
한편 강력한 긴축 정책 여파로 미국 경기침체가 내년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이 경제학자 4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70%가 내년 미국의 경기침체가 가시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응답자 38%는 내년 상반기(1∼6월), 30%는 내년 하반기(6∼12월)에 경기침체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 2024년 하반기 이후 침체가 올 것이라는 응답은 21%에 그쳤다.
연준이 앞으로 기준금리를 어디까지 올릴지에 대해서는 응답자 55%가 3∼4%로 예상했다. 22%는 2∼3%를, 14%는 4∼5%로 각각 전망했다.
연준이 강력한 긴축을 예고했지만, 인플레이션 전망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FT가 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의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2023년 말까지 3%를 초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응답한 전문가는 4%에 그쳤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12%로 급증했다. 근원 PCE 물가지수는 변동성이 높은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지표로, 연준이 통화정책을 책정하는 데 참고하는 주요 지표다.
FT는 이번 설문조사에 대해 “경제적 고통 없이 물가를 억제할 수 있다는 연준의 주장과 상반되는 결과”라고 전했다. 타라 싱클레어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교수는 미국 경제가 “비행기가 곡예사가 타는 한 줄에 착륙해야 하는데, 바람까지 부는 상황”이라고 비유하며 “소득과 지출을 충분히 줄여 물가상승률을 목표 2%에 맞춘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