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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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닌 제도가 지원하는 돌봄… 탈시설 발달장애인의 자립 생활

복지관에서 제공된 프로그램 참여
끝난 후엔 활동지원사 도움받아
자유로운 외출에 축구 경기 관람도

휴대전화로 가족과 수시로 연락
시설 입소 후 가족들 삶 달라져
지난 7일 서울 서울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에서  김민수 사회복지사(왼쪽)의 도움을 받아 발달장애·뇌병변 중복장애인 권순철(44·오른쪽)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희연 기자

‘축구’. 장애인 거주생활시설에서 나온 후 어떤 점이 제일 좋았냐는 질문에 발달장애·뇌병변 중복장애인 권순철(44)씨는 망설임 없이 두 글자를 종이에 적었다. 권씨는 올해 들어 두 번이나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다녀왔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과 세계랭킹 1위 브라질과의 평가전을 직관하기 위해서다. 권씨는 “그런 외출은 장애인 거주생활시설에 있었을 때는 상상도 못 했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권씨는 2014년 20년 넘게 이어온 시설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했다. 시설에서 나온 뒤 ‘체험홈’에서 자립의지를 가진 발달장애인 3명, 활동지원사 1명과 함께 자립을 준비하다가 2019년부터는 독립해 생활하고 있다.

 

◆탈시설 후 복지관·활동지원서비스로 분산되는 ‘돌봄’

 

권씨에게는 아버지, 누나 2명, 남동생 1명이 있는데, 모두 따로 지낸다. 대신 발달장애인 복지관과 활동지원사가 권씨를 돌보고 있다.

 

권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보라매공원 안에 위치한 서울시립 발달장애인 복지관으로 향한다. 복지관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권씨는 태플릿 PC 사용법 등을 배우는 ‘컴퓨터 활동’, 보라매공원을 걷는 ‘걷기 운동’, 트로트를 틀어놓고 신나게 춤추는 ‘방송댄스’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때로는 사회복지사와 함께 ‘지역사회활동’을 나가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에는 영화관이나 노래방도 다녔고,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서울로 7017도 다녀왔다고 했다. 권씨의 일상은 복지관 덕분에 다채롭게 채워졌다.

 

복지관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는 활동지원사와 동행한다. 활동지원사는 오후 4시30분부터 2시간 정도 권씨의 생활을 돕는다. 그는 권씨와 함께 장애인 콜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장애인 콜택시가 이동하기는 편리하지만 콜이 잡힐 때까지 길게는 1시간 넘게도 기다려야 하는 탓에 지하철을 탈 때도 많다. 권씨는 활동지원사가 떠난 뒤에는 주로 TV를 보다가 저녁 9시쯤 잠든다고 했다.

 

서울 서울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의 일주일 프로그램 시간표. 조희연 기자

권씨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나는 자연인이다’ ‘야인시대’ 등이 있지만, 역시 빠지지 않는 게 축구 경기다. 지난달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와 노리치시티의 경기를 보느라 새벽 2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다. 권씨는 종이에 ‘토트넘 손흥민’이라고 쓰고 싱긋 웃으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오전 7시에 일어나 복지관을 향했지만, 그날은 잠을 많이 못 잔 탓에 하루종일 꾸벅꾸벅 졸았다고 덧붙였다. 그것조차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또한 시설에서 생활할 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권씨가 지내던 시설은 저녁 9시가 되면 TV를 끄고 잠을 자게 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시간대에 열리는 해외 축구 경기는 볼 수가 없었고, 주로 K리그만 볼 수 있었다.

 

탈시설 후 또 달라진 점은 휴대전화 사용이다. 그가 지내던 시설에서는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없었고, 공중전화로 연락을 해야 했다. 권씨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선생님 몰래 전화기를 썼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휴대전화로 매일 지인들에게 전화한다. 가족과 전보다 자주 연락하게 됐고, 독립생활연대 김용달 선생님에게도 자주 전화해 장난을 친다며 김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전했다.

 

◆“사회인이 된 기분”…탈시설·자립으로 변화된 발달장애인 가족의 삶

 

휴대전화 사용은 발달장애인의 가족에게도 큰 변화다. 중증 발달장애인 서지원(31)씨의 어머니 임현주(58)씨는 “탈시설 후 아이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면, 아이는 말을 못하지만 활동지원사가 대신 전화를 받아서 ‘지원이 밥 먹고 있어요’라거나 ‘산책 중이에요’라면서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준다”고 했다.

 

임씨는 “아이가 시설에 있을 땐 평소 아이의 소식을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면서 “연락이 단절되니 아이를 버린 것 같아 죄책감이 많이 들었었다”고 말했다. 임씨는 2011년부터 9년 정도 아들을 시설에 맡겼다. 당시 서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하루 온종일 집에서 생활하게 됐는데, 임씨는 홀로 가정의 경제 부양을 책임지던 상황이라서 일을 그만두고 아이 돌봄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2020년 탈시설 후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 숲’을 찾은 서지원(31)씨 모습. 서지원씨 어머니 임현주씨 제공

탈시설을 결심한 계기는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3월, 서씨가 폐렴을 앓게 되자 시설은 서씨를 퇴소시키겠다고 했다. 임씨는 이전에도 이미 여러차례 시설에서 “아이를 데려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중증 발달장애라서 많이 힘들게 했을 것”이라며 “시설은 일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거기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더욱 집중해 지원하기보다는 나가라고 해버린다”고 덧붙였다.

 

시설 이외의 대안을 몰랐던 임씨는 주변에 상담을 요청했고, 소식을 전해 들은 탈시설 지원 단체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발바닥)이 ‘장애인 지원주택’ 제도에 대해 소개해줬다. 지원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주거공간에 더해 기초적인 일상생활 등의 복지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그렇게 발바닥과 함께 탈시설을 준비해, 그해 5월부터 서씨는 지원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서씨가 신청한 지원주택은 2명이 함께 쓰는 형태다. 각자의 활동지원사까지 포함하면 4명이 한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도 생겼다. 지원씨가 탈시설 한 후, 정부가 지원씨 앞으로 책정한 장애인활동지원 시간은 고작 월 120시간에 불과했다. 하루 4시간인 셈이다. 임씨는 “말도 못하고, 기저귀 차고 있고,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구별 못 하는 아이인데 120 시간은 납득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추가 시간을 받기 위해 시와 구에서 제공하는 활동지원 시간까지 끌어모아 현재는 월 320 시간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긴 하지만 “320 시간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는 서씨가 혼자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옆방 거주자의 활동지원사를 통해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도움을 받고 있는 상태다. 임씨는 장애인활동지원 시스템 문제를 탈시설 후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꼽았다.

 

그래도 임씨는 지원주택 서비스 덕분에 ‘사회인’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장애인이 태어나면 부모가 돌봄을 독박 쓰곤 한다. ‘니 자식인데 누가 돌보냐’고 한다”면서 “중증 발달장애 아이를 돌보는 게 쉽지 않은 걸 아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도 못하고, 철저히 사회에서 소외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임씨는 아들을 돌보느라 동생의 약혼식도 가지 못했다.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화장실 문조차 닫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슬픔은 안녕’이다. 내 생활에 더 집중할 수 있으니 사회인이 된 것 같고, 기진맥진 했던 삶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서울 구로구 ‘푸른 수목원’에서 임현주(58·왼쪽)씨와 아들 서지원(31·오른쪽)가 사진을 찍고 있다. 임현주씨 제공

◆탈시설에서 ‘자립’까지…제도 구축 뿐 아니라 정보 전달도 중요

 

모든 탈시설 장애인이 서씨처럼 자립해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시설 밖으로 나와 가족과 함께 지낸다. 임씨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의 독립을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며 그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자녀의 자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실제로 발달장애인 가족은 자녀의 돌봄을 지원하는 제도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임씨는 “(지원서비스) 정보를 찾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초등학교 입학할 때, 군대에 갈 때 통지서가 오듯이 장애인 가족을 위해 정부가 미리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 역할을 시민단체가 대신해주고 있다. 권씨와 서씨 모두 장애인의 독립생활을 지원하는 단체의 도움을 받아 탈시설 후 자립까지 이룰 수 있었다. 권씨는 ‘중증장애인 독립생활연대’를 만나, 서씨는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을 통해 장애인 지원 제도를 알게 되고 자립 계획을 세웠다.

 

제도적 문제 뿐 아니라 ‘내가 끝까지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인식의 영향도 있다. 하지만 임씨는 “지금부터 아이의 독립을 함께 준비해줘야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 체구가 아무리 작아도 나이가 들면 부모보다 힘이 세지고 달리기가 빨라지기도 한다. 아이랑 엄마가 산책을 나갔는데, 아이를 못 따라가서 실종되는 사건이 생기기도 한다. 부모가 돌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발달장애 아이들은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며 “자기 뜻대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걸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임씨는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른다”면서도 “이제는 그 걱정을 덜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내가 죽어도 상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아이에게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