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을 다녀오겠습니다’ 책의 저자인 허선영씨는 2017년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학교를 그만뒀다. 입시 준비에 지쳐 학교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상상을 하는 여느 고등학생처럼 허씨가 자퇴를 꿈꿔왔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자퇴를 권한 사람은 허씨의 아버지였다.
15일 허씨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놀랐다”며 그때를 되돌아봤다. 어느 날 평소처럼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고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대뜸 자퇴를 권했다.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고 ‘문제아’도 아니었기에 허씨는 자퇴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부모님이 자퇴를 먼저 권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부모님은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살아오신 분들인데 그런 제안을 할 줄은 몰랐다”고 허씨는 밝혔다. 허씨의 어머니는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였고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부모님은 허씨의 학교생활에도 관심이 컸다. 허씨가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배정받자 긴 통학시간 탓에 공부에 소홀해질까 봐 학교 앞으로 이사까지 했을 정도였다.
허씨는 “제가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오는 걸 보면서 아버지가 고민을 많이 하셨다”며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아버지가 학부모 진학설명회에서 명문대 진학률을 자랑하는 학교를 보고 30년 전과 다를 게 없는 공교육에 실망했다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자퇴를 권유받던 날 허씨의 아버지는 허씨에게 “남들처럼 똑같이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한 삶이 아닌, 선영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찾아서 선영이 만의 삶을 꾸려가기를 바란다”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그 말을 듣고 허씨는 거의 반년을 고민했다. 허씨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학교생활이 그리울 것 같았고, 저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도 두려웠다”고 회상했다. 고민 끝에 허씨는 학교 밖으로 나오기로 결심했다.
“저도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걸 찾고 싶어졌거든요. 그런 생각을 깊이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텅 빈 일정을 채우는 게 내 일정
학교를 나오고 가장 좋았던 점은 아침부터 밤까지 원하는 대로 일정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씨는 “영어를 공부하고 싶으면 영어를 배우고, 자원봉사를 하고 싶을 땐 며칠 시간을 내서 가면 됐다”며 “제 삶의 스케줄을 제가 짤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했다. 캄보디아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고, 새로운 문화를 겪어보겠단 생각으로 일본에 가 홈스테이를 하면서 일본의 가정생활도 체험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을 기회가 줄어든 게 아쉬웠다. 허씨는 “친구들이 수학 여행이나 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을 볼 때는 내심 부러웠다”고 했다. 학교에 다녔다면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갔을 무렵인 19살 끝자락에는 조바심도 났다.
“학교를 나와서 공부도 하고 부지런히 생활했지만 친구들은 내년에 대학교에 들어갈 텐데 ‘난 뭘 해야 하지’란 고민이 들었어요.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죠.”
이런 고민을 부모님에게 전하자 부모님은 허씨에게 넓은 세상을 겪고 오기를 권했다. 서구에서 학생들이 대학교에 가기 전 ‘갭이어’(Gap year·고등학교 졸업 후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여행 등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 길’을 찾는 기간)를 갖는 것처럼 허씨도 내 길을 찾는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소중하고 특별했던 내 경험, ‘오페어’
그렇게 20살이 된 허씨는 2019년 4월15일 한국을 떠나 348일간 미국에서 ‘오페어’(AU pair)를 했다. 오페어는 현지에서 외국인 가정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숙식과 급여를 받는 것을 뜻한다. 현지 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내 시간’이 보장돼 대학 등에서 공부도 할 수 있다.
허씨는 지원서와 자기소개 영상 등을 올리고 여러 가정과 원격으로 면접한 끝에 미국 플로리다주의 도시 템파에 사는 아이 셋을 가진 한 부부의 집에 들어가게 됐다.
미국에서 허씨의 일상은 이랬다. 평일에는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서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밥을 챙겨줬다. 아이들은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1·4·6학년이었다. 오전 7시5분에 막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8시30분에 등교하는 첫째와 둘째를 봐줬다. 이후 오후 3∼4시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허씨는 이 시간에 아이들 옷을 세탁하는 등 간단한 집안일을 했다. 집안일이라고는 해도 오페어는 가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과 관련된 일만 하면 됐다. 오후에 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고 저녁밥을 해주고, 잠깐 놀아주고 나면 오후 7시쯤 일과가 끝났다. 주말은 쉬었다.
허씨는 “오페어를 하면서 영어가 많이 늘었다”면서 “가정에서 함께 살다 보니까 핼러윈이나 부활절 등을 같이 지내면서 미국 문화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고 틈틈이 여행도 많이 다녔다”고 좋았던 경험을 말했다.
물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허씨는 “가끔 애들이 저를 함부로 대할 때 힘들었다”며 “지금이라면 웃으면서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저도 어렸고 이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허씨는 애초에 2년 동안 오페어를 할 계획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계획을 바꿔야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고 집에만 있자 온종일 애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니기도 어려웠고 대학 수업도 다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오페어의 장점이 사라졌고, 허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러 갈림길에서 찾은 내 길
허씨는 1년 남짓의 오페어 경험을 엮어 ‘학교 밖을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책을 냈다. 지난해에는 ‘누구보다도 특별한 나의 스무살 이야기’를 주제로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축제인 ‘꿈드림 축제’에서 강연도 했다. 허씨는 “많이 알려진 워킹홀리데이에 비해 오페어를 아는 사람은 드물어서 이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에 와서도 허씨의 도전은 이어졌다. 오페어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부산 감천문화마을에 소품숍을 작게 냈다. 경험 삼아 해본 사업이었는데 가게를 찾은 손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고 가게를 키우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그래서 마침 비어있는 옆 가게를 인수해 벽을 뚫었다. 허씨는 “레스토랑이랑 카페도 열어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일 수는 있지만,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라고 웃으며 말했다.
만약에 학교를 자퇴했던 2017년 그날로 돌아간다면 같은 결정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허씨는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했다.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면 ‘하던 대로’ 계속 살았을 것 같거든요. 학교 밖에 나오면서 저에 대해 깊게 생각해봤고 여러 경험을 하고 지금의 ‘내’가 됐죠. 무엇보다 너무 행복해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출근하기 싫다’가 아니고 ‘오늘은 어떤 손님이 올지’, ‘제가 뭘 할지’ 기대돼요. 그래서 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