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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향하던 조류, 썰물처럼 빠져나가"…업계 동반 추락 [뉴스+]

전체 가상화폐 시가총액 7개월새 2조달러 증발
가상화폐,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연상시켜
최근 한국의 ‘테라폼랩스’ 대표적인 몰락 사례
“가상화폐 시장 더 어두운 단계로 진입하는 중”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미국 금융당국의 '자이언트 스텝' 발표 이후 가상화폐 시장이 반등했다. 뉴스1

가상화폐 가격이 최근 폭락하면서 관련 업계 역시 동반 붕괴하고 있다. 거래소, 금융기관, 설계·발행사 등 가상화폐 관련 기업·플랫폼들이 최근 2년간 가상화폐 가격 오름세와 함께 전례 없던 부흥기를 누렸으나, 가상화폐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자 맥없이 고꾸라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가상화폐로 향하던 조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상화폐 정보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작년 11월 2조9680억달러(약 3826조원)로 정점을 찍었던 전체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은 7개월 만에 2조달러 넘게 증발하면서 9000억달러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비롯한 관련 업체들이 최근 몇 달간 공식적으로 밝힌 해고 인원만 총 1600명을 넘겼다고 블록체인 전문 매체 더블록은 전했다.

 

◆관련 기업들 줄줄이 핵심 업무 중단·직원 해고

 

가상화폐 몰락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한국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테라폼랩스’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테라폼랩스가 루나와 테라USD(UST) 폭락 사태로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며 “매우 위험성이 큰 금융공학 모델을 앞세웠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 금융기관을 자처하는 ‘셀시어스’의 인출 중단도 업계에 타격을 입혔다고 NYT는 지적했다. 셀시어스는 가상화폐를 예금할 경우 18%대의 이자를 지급하겠다며 170만명의 예금자를 끌어모았으나 갑작스럽게 인출 중단을 선언하면서 전체 가상화폐 시장의 신뢰에 균열을 냈다.

사진=연합뉴스

전세계 가상화폐 관련 생태계는 붕괴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전체 직원의 18%인 1100명을 잘라내겠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의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27% 줄었고, 최근 주가는 작년 상장 당시와 비교했을 때 거의 4분의 1수준이다.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CEO는 직원 감축 사실을 통보하면서 “직원을 너무 많이 뽑았다. 회사가 너무 빠르게 성장했다”고 실토했다.

 

또 다른 가상화폐 거래소 제미나이도 “가상화폐의 겨울이 찾아왔다”며 직원 10%인 100명에 대한 감축 계획을 밝혔다. 가상화폐 거래소 크립토닷컴은 10일 전체 인력의 5%인 260명가량에 대한 해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고, 가상화폐 대출업체 블록파이는 13일 직원의 20% 정도인 150명 이상을 줄일 방침이다. 가상화폐 파생상품 거래 플랫폼인 비트맥스는 지난 4월 75명을 감원했다.

 

가상화폐 업계의 현 상황이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을 방불케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투자자들은 이제 막 보급되던 인터넷의 가능성만 믿고 닷컴회사에 뭉칫돈을 던졌으나 살아남은 회사는 많지 않다. 일각에서는 가상화폐 업계 역시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가상화폐, 위험하고 지속불가능한 기반 위에 있어”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폭락이 예견된 것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당국자 출신인 리 레이너스 듀크대 로스쿨 교수는 “이제 (암호화폐 업계의) 음악이 꺼져버렸다”고 단언했다. 그는 “암호화폐로 향하던 조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며 “암호화폐 관련 기업이나 관련 플랫폼 상당수가 얼마나 위험하고 지속불가능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고 꼬집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지난 14일 이날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 주최로 열린 기후변화 관련 행사에 참석해 대체불가토큰(NFT)을 비롯한 가상화폐 관련 자산에 대해 ‘더 큰 바보 이론’에 기반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이론은 ‘바보’가 내재가치보다 비싸게 투자대상을 사들여도 이를 ‘더 큰 바보’에게 더 높은 가격에 되팔아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이러한 구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장에 신규 투자자가 계속 유입돼야 한다.

 

실제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최근 한국산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및 자매코인 루나의 실패, 가상화폐 금융기관 셀시어스의 예치코인 인출 중단 등이 발생하며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게이츠는 유명 NFT인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 클럽’(BAYC)을 거론하며 “원숭이를 담은 값비싼 디지털 이미지가 확실히 세계를 엄청나게 개선할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설립자. 뉴시스

◆가상화폐 가격은 끝이 안 보이는 추락 중

 

가상화폐 가격은 연일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8.6% 올라 41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지난 10일 저녁 이후 약 닷새 만에 25%가량 떨어졌다. 특히 전날에는 2741만2000원까지 추락해 24시간 전 대비 하락률이 무려 18%에 이르렀다. 이 가격대는 연초의 반 토막 수준이다. 지난해 11월9일 기록한 최고점과 비교하면 65%가량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우려가 가상화폐 급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가 통화 긴축 시기에 투자자들이 피하는 ‘위험자산’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석문 코빗리서치센터장은 “가상화폐가 신생 자산군이고 네트워크 초기 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나스닥과 함께 위험자산으로 분류돼 움직이고 있다”면서 “연준의 긴축 정책에 대한 우려가 수그러드는 시점에야 반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경제성장 전망치가 낮아지면 연준의 긴축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면서 “현재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는 신호가 조금씩 나오고 있으며, 더 센 신호가 나오려면 올해 하반기는 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상화폐 시장이 지금보다 더 침체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가상화폐 시장 분석업체인 글래스노드는 “최근 가상화폐 시장의 약세는 이전과 비교해 가장 깊고 어두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면서 시장의 혹한기를 예고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