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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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피난민 집단소송… 日 정부 책임 인정되나

최고재판소, 17일 원전 사고 정부 책임 여부 첫 판단
정부 지진 예측 자료 ‘장기 평가’ 신뢰성 여부가 쟁점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폐허가 된 주변 지역.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 11년간 피난 생활을 반복하면서 뿌리뽑힌 풀처럼, 길거리를 헤맨 것 처럼 의미없는 시간을 보냈다.”

 

후카야 게이코(深谷敬子·77·여)씨의 말은 2011년 3월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근 주민들이 겪은 고통의 시간이 어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원전에서 7㎞ 정도 떨어진 마을에서 미용실을 운영했던 후카야씨는 사고 이후 10번이나 거처를 옮기는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런 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후쿠시마현 주민이 최대 16만4000여 명에 이르고 지금도 3만 여 명이 부초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같은 피해를 배상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주민들이 낸 집단소송에 대한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 판결이 17일 오후 나온다. 하급심의 판결은 엇갈렸던 가운데 최고재판소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정부의 책임 여부를 처음 판단하는 것이어서 결과에 따라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최고재판소는 후쿠시마(福島) 군마(群馬), 치바(千葉)、에히메(愛媛)에서 진행된 재판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린다. 하급심에서는 판단이 엇갈렸다. 후쿠시마, 에히메에서 진행된 재판에서는 1, 2심 모두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치바의 재판에서는 1심은 국가에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2심 판결은 달랐다. 군마의 경우엔 책임을 인정한 1심 판단이 2심에서 뒤집혔다. 

 

재판의 쟁점은 사고의 원인이 된 지진, 쓰나미를 정부가 예측할 수 있었는지, 또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대책을 제대로 세웠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는지였다. 특히 지진예측을 위해 문부과학성이 주도해 만들어 사고 발생 9년 전인 2002년 발표한 ‘장기평가’(長期評價)의 신뢰성을 두고 원·피고 양측이 충돌했다. 장기평가는 “진도 8의 지진이 30년 이내에 약 20%의 확률로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고 측, 즉 주민들은 장기 평가를 근거로 “정부가 거대한 쓰나미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쓰나미를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피고 측, 즉 정부는 장기평가가 정부가 직접 생산한 자료임에도 신뢰성을 부정했다는 점이다. 피고 측은 “장기평가는 방재상의 경고를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근거가 부족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장기평가를 근거로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미다.

 

하급심 판결도 장기평가의 신뢰성을 달리보면서 엇갈렸다. 정부 책임을 인정한 후쿠시마의 1, 2심 재판부는 “장기평가는 객관적, 합리적 근거가 있고, 그것에 근거에 신속하게 대응했다면 정부, 도쿄전력이 쓰나미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마의 2심은 “장기평가를 통해 쓰나미 발생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 힘들고, 쓰나미 대책을 세웠다고 해도 사고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