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을 겨냥한 사정 정국이 열리며 신구 권력 충돌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겨냥한 검찰 수사에 이어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 대한 수사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서다. 둘 다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정점으로 지목된 사건들이다. 특히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관련 진상 규명에 감사원도 가세해 정국에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여권에선 숨진 공무원 사건 수사가 ‘처음부터 월북으로 방향을 정한 채 이뤄졌다’는 해양경찰의 ‘양심 고백’이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 역시 사실이라면 실체 진실 파악을 위한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파장이 예상된다.
감사원은 17일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과 관련해 최초 보고 과정과 절차, 업무처리의 적법성과 적정성 등에 대해서 정밀 점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재인정부가 불충분한 정황만으로 숨진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단정 지었다는 취지의 국방부·해경 발표 하루 만이다.
감사원은 해당 사건을 특별조사국에 배당했다. 1∼5과로 구성된 특별조사국은 공무원의 직무감찰에 특화된 부서다. 조사 대상이 수사기관에 입건될 것으로 보이는 사건을 주로 감사한다. 검찰로 치면 특별수사부(특수부·현 반부패수사부) 격이다. 이 때문에 특별조사국 조사 선상에 오른 공무원은 형사사건 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감사원은 국방부와 해경을 상대로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할 예정이며, 사건 갈래를 파악한 뒤 필요하면 감사 인력을 충원할 계획이다.
해당 사안이 형사사건으로 비화하면 수사기관의 칼끝은 국방부·해경을 넘어 문재인정부 청와대까지 겨눌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안보실이 주요 수사 선상에 오를 가능성 높다. 여권에서는 서훈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수사 선상에 오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 대한 새 정부 판단이 문재인정부 때와 달라진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국가적 자해’, ‘교묘하게 사실관계 호도’ 등 비판이 나온 것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뭐가 나오면 맨날 그런 정치 권력적으로 문제를 해석한다”고 맞받았다.
한편 해경이 숨진 공무원 사건을 처음부터 ‘자진 월북’으로 결론짓고 수사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해경 관계자가 자신을 찾아와 ‘수사하기 전에 이미 월북 결론이 나 있었다’는 취지의 ‘양심 고백’을 했다고 말했다. 그 고백은 정권교체 직전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586 운동가들이 가장 혐오하는 게 월북조작”이라며 “이게 과거 독재정권이나 하던 짓이다. 자기들이 가장 혐오하던 짓을 586 운동권 정권이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도 사실 천벌 받을 짓이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도 국회에서 열린 당 회의에서 “문재인정부의 대북 저자세가 결국 북한 눈치 보기를 자국민 생명보호보다 우위에 뒀다”며 “국가 스스로 존재 이유와 존엄을 포기했다”고 질타했다.
그러자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당시 첩보 중에는 월북이라고 특정지을 만한 첩보도 있었던 것”이라며 “이걸 왜 또 꺼내 들어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 의도적으로 전 정권이 북한 눈치를 보면서 살살 기었다는 방향으로 몰고 가고 싶은 모양”이라고 반박했다. 우 위원장은 또 검찰의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와 경찰의 백현동 개발 의혹 관련 성남시청 압수수색에 대해 “윤 정권은 기획된 정치보복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은 20일 관련 기구를 띄워 당 차원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국민의 생명보호 의무를 저버린 문재인정부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