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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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만에 최악 ‘경제 고통’… 尹 “민생물가 초당적 대응”

5월 ‘고통지수’ 8.4 기록

물가상승률 5.4%·실업률 3.0%
코스피 2400선마저도 붕괴
원·달러 환율은 연고점 경신

“전세계 고물가 잡으려 고금리 정책 써
국회가 정상 가동됐으면 법안 냈을 것”

외국인 하루 6624억 투매 코스피 급락
코스닥도 기술주 약세에 연저점 경신

경기침체 우려 확산에도 변곡점 없어
고물가·고금리發 경제쇼크 이어질 듯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뉴스1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가 5월 기준으로 2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국내 주식과 가상자산 시장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치솟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거래절벽에 얼어붙으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 이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복합위기가 한국경제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다. 더욱이 올 하반기부터는 인플레이션이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경기 침체(recession)에 들어갈 수 있다는 ‘R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침체는)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도는 없다”고 했을 정도다.

 

20일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월 경제고통지수는 8.4를 기록해 21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경제고통지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수치로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고안한 지표다. 소비자물가와 실업률이라는 체감지표를 가지고 서민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을 지수화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 실업률은 3.0%였다. 고용지표가 계절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동월 기준으로 비교하면, 지난달 경제고통지수는 2001년 5월(9.0) 이후 최고치다.

 

이는 물가 급등에 따른 결과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올해 들어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반면 실업률은 5월 기준으로 2013년(3.0%) 이후 가장 낮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상 회복, 직접 일자리 사업 조기집행 등의 영향으로 지난달 고용 지표는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당분간 높은 수준의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생계에 대한 어려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서민경제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지만, 정부로서는 마땅한 수가 없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벌어진 통화량 증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대외적 변수가 물가 급등을 견인하고 있는 탓이다.

 

20일 오후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이 6주 연속 상승하며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고유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다음 달부터 연말까지 유류세 인하 폭을 법상 허용된 최대한도인 37로 확대한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에 대한 질문에 “통화량이 많이 풀린 데다가 고물가를 잡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고금리 정책을 쓰고 있는 마당에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도는 없다”며 “정부의 정책 타깃인 중산층과 서민들의 민생물가를 어떻게든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추가적인 민생 대책 마련을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지금 국민들이 (물가 급등 등 경제 위기로)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대응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국회 원구성이 안 돼 있는데 국회가 정상 가동이 됐으면 법 개정 사안에 대해 법안을 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한국 주식시장은 이날도 상대적으로 큰 하락세를 보였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9.90포인트(2.04%) 내린 2391.03에 장을 마쳤다. 아시아 다른 시장보다 하락세가 컸다. 니케이225와 대만 가권은 코스피보다 낮은 하락률을 보였고, 홍콩 항셍과 상하이종합지수는 상승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소폭 상승하면서 개장했지만 곧 하락으로 전환하며 낙폭을 키웠다. 장중 한때 2372.35까지 하락했다. 코스피 종가가 2400선을 하회한 것은 2020년11월4일 2357.35 이후 1년 7개월여 만이다. 코스피는 지난 14일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2500선이 무너진 데 이어 이날 2400선도 붕괴되면서 일주일여 만에 지수가 100포인트 이상 밀렸다. 외국인은 이날 하루 동안에만 6624억원을 팔아치우며 코스피에서 빠져나갔다. ‘대장주’ 삼성전자는 이날 1100원(1.84%) 떨어진 5만8700원으로 다시 하락했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삼성SDI와 현대차만이 상승하고 나머지는 하락했으며, 네이버(-1.47%), 카카오(-3.6%) 등 기술주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인텔의 차세대 CPU 생산일정 연기 소식이 IT업종에 대한 우려 확대로 이어졌다.

 

20일 서울 중구의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9.90포인트(2.04%) 하락한 2391.03에 거래를 마치며 연저점을 경신한 것은 물론 2020년 11월4일(2357.35) 이후 1년 7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하상윤 기자

코스닥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28.77포인트(3.60%) 급락한 769.92에 마감했다.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연저점을 경신했다.

 

최근 주식시장 하락 추세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못지않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보유 주식 금액) 비율은 2009년 당시인 30% 수준까지 떨어졌다. 올 들어서만 14조원 이상 코스피를 팔아치운 외국인은 하반기에도 미국 중앙은행의 고강도 긴축 영향으로 국내 증시 이탈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원·달러 환율도 전 거래일 종가보다 5.1원 오른 달러당 1292.4원에 거래를 마쳤는데 장중 1295.3원까지 올라 연고점을 다시 경신하고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의 최고점(1296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국고채 3년만기 채권금리는 다시 올라 장중 3.75%를 기록했다.

 

한국경제에 짙은 침체의 기운이 드리우고 있지만 당장의 변곡점이 쉽사리 보이지 않아 더 큰 문제다.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디지털리서치 팀장은 통화에서 “심리적으로 반전을 줄 수 있을 만한 이벤트가 굉장히 부재하다”며 “오늘 처럼 조그마한 악재가 생기면 바로 무너지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도형·이현미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