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행안부 장관이 경찰 관리·운영… 경찰, 제도 개선안에 “4·19혁명 가치 손상”

자문위원회,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지원 조직 신설 권고
"경찰 권한 늘어날수록 견제·균형 원리 작동돼야"
자문위 설명에도…행안부 '경찰 통제' 대한 의견 엇갈려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공동 위원장인 황정근 변호사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 통제 방안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대 자문위원. 황정근 변호사,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연합뉴스

행정안전부가 21일 가칭 ‘경찰국’을 신설하고 경찰청장 지휘규칙을 만드는 내용의 제도개선 권고안을 내놓았다. 경찰 입장에서는 ‘권력의 경찰 통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쟁점은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누가,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이다. 행안부는 현행 법상 장관이 경찰 정책에 대한 지휘권, 인사·징계권을 갖고 있기에 이번 권고안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학계에서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행안부 경찰국 만들고 지휘규칙 제정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지시로 구성된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는 이날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지원조직을 신설할 것을 권고했다. 현재 비직제 조직인 치안정책관실을 공식화한 것으로 권고안 발표 전부터 ‘경찰국’ 신설로 받아들여졌다. 

 

자문위는 헌법, 정부조직법, 경찰법, 형사소송법 등에 따라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과 관련해 다양한 권한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법령 발의·제안, 소속청장 지휘권, 경찰청장·국가경찰위원 임명 제청, 총경 이상 경찰공무원 임용 제청, 수사 규정 개정 협의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문위는 장관의 이런 업무를 보좌할 조직이 없어 권한을 실행하지 못했기에 조직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지휘규칙 제정도 정부조직법 제7조 4항에 따라 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이 법은 각 행정기관의 장이 소속청의 중요정책 수립에 관해 그 청의 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자문위는 소속청이 설치된 10개 부처 중 기획재정부 등 7개 부처는 지휘 규칙을 갖고 있으나 행안부·해양수산부만 없다고 설명했다.

황정근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 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위원회 권고안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인사·징계도 강화… 시행령 개정부터 추진

 

경찰 인사권 관련해서도 민감한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권고안은 ‘행안부에 경찰청장·국가수사본부장 그 밖의 경찰 고위직 인사제청에 관한 후보추천위원회 또는 제청자문위원회 설치’를 담았다. 후보추천위 설치는 법 개정이 필요하고, 제청자문위는 시행령으로 가능하다. 

 

경찰청장이 스스로 징계를 요구해야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 ‘셀프 징계’도 문제 삼았다. 자문위는 ‘경찰청장을 포함한 일정직급 이상의 고위직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는 행안부 장관에게 징계요구권을 부여’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경찰에 대한 통제 강화와 함께 ‘당근’을 제시했다. 수사권 확대에 따른 경찰의 임무수행 역량 강화를 위해 인력 확충, 수사 전문성강화, 계급정년제 및 복수직급제 개선, 순경 등 일반출신의 고위직 승진 확대, 교육훈련 강화, 공안 분야와 대비한 처우개선 등 경찰 업무 관련 인프라 확충 방안을 내놓았다.

 

판사 출신 변호사인 황정근 자문위원장은 “자문위가 생긴 결정적 이유는 지난해 경찰이 수사권을 처음 취득했기 때문”이라며 “경찰이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지 않게 된 것은 사법 절차에서 혁명적인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 권한이 늘어날수록 권한 행사에 있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돼야 한다”며 “국무위원인 행안부 장관이 경찰에 대한 정책제도, 인사, 법령 소관 권한을 다 가지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동하는 경찰들 모습. 연합뉴스

경찰행정 심의·의결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가 경찰을 견제하는 안에 대해서는 “국가경찰위는 사무조직이 없다보니 직원이 3명밖에 없다”며 “현재 사실상 경찰청의 자문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적 개혁안, 경찰제도발전위서 논의

 

자문위는 경찰제도를 광범위하고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경찰제도발전위원회’(가칭)를 설치할 것을 건의했다. 이 위원회에서는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 사무에 경찰 관련사항 명확화 △사법·행정경찰 구분 △정보경찰 기능 범위 제한 △국가경찰위 사무수행부서 행안부로 이관 △자치경찰제도 발전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원칙적으로 이 위원회에서는 경찰 견제 기능을 행안부가 아닌 다른 기관에 두는 문제도 검토할 수 있다. 

 

한창섭 행안부 차관은 “권고안 중 행안부 하부 조직 신설은 대통령령, 지휘규칙은 행안부 부령으로 발령이 가능하다”며 “나머지 대부분의 권고안은 법률 개정사항”이라고 밝혔다. 한 차관은 “관계기관·이해관계자들 의견을 수렴해서 빠른 시일 내에 (제도개선을) 마무리하겠다”며 “법률 개정 사항은 경찰제도발전위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자문위는 한 차관과 행안부 기획조정실장, 경찰청 수사기획조정관, 민간위원 6명으로 이뤄졌다. 자문위는 이 장관 취임과 동시에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10일까지 한달만에 4차례 회의를 열어 권고안을 내놨다.

 

민간위원으로는 대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황정근 변호사, 한국비교공법학회 회장인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인 정웅석 서경대 교수, 경찰대 강욱 교수,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석대 전 한남대 객원교수가 포함됐다.

사진=뉴시스

◆“비대한 경찰 조직, 행안부 지휘는 과도”

 

자문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행안부가 경찰을 민주적으로 견제할 기관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경찰과 학계에서는 행안부 권고안을 내무부 치안본부의 부활로 해석했다. 한국 경찰 조직은 1945년 미군정청 경무국으로 출발했다. 1948년 내무부 산하 치안국으로 바뀌었고 1974년 차관급인 치안본부로 격상됐다. 이후 경찰의 중립성·독립성 보장 요구가 커지면서 1991년 내무부에서 ‘경찰청’이 분리됐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경찰중립화는 헌법 가치로, 우리 사회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행안부 장관 대신 국가경찰위가 경찰을 통제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결론 지었다”며 “이를 되돌리면 4·19혁명 등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경찰학)는 권고안에 대해 “당근과 채찍을 모두 휘두르며 경찰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경찰 조직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비대한 조직 전체를 행안부가 지휘한다는 것은 과도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경찰을 통제할 필요는 있지만 이 상태로 행안부가 하게 되면 정치적 중립 훼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경찰권 비대화를 우려해 수사 기능을 분리한 자치경찰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분리된 것이 하나도 없고 옛날과 똑같이 14만명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며 “통제할 필요는 있지만 이 상태로 행안부가 하게 되면 정치적 중립 훼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원래 계획대로 국가중앙수사청이 완전히 독립하고, 자치경찰이 실질화되도록 시도지사에 위임된다면 행안부에 자치경찰국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이 교수는 “지방자치를 다루는 행안부의 본래 성격에도 그것이 더 맞다”며 “완벽한 자치경찰화가 됐을 때 시도지사의 용병화 사병화 우려도 있는 만큼 그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행안부가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송은아·정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