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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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감염병과 ‘혐오 바이러스’

지난 22일 국내에서 첫 원숭이두창(Monkeypox) 확진자가 발생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50여개국에서 3000여건의 확진 사례가 보고되는 등 질병이 생각보다 빠르게 확산하자 풍토병, 비풍토병 구분을 없애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감염병의 창궐 가능성은 시민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그리고 불안감이 잠식할 때마다, ‘마녀 사냥’ 같은 특정 집단 혐오가 공식처럼 따라온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차장

이번 원숭이두창의 경우 성소수자들이 대상이 됐다. 인터넷에서는 “성소수자가 원숭이두창의 원인”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이에 동조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있다.

원숭이두창은 1958년 원숭이에게서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천연두, 마마라고 불리던 질병의 원숭이 버전인데, 1970년 인간 전파가 처음 확인됐다. 감염 경로는 호흡기 비말 감염 등 밀접 접촉. 굳이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감염은 어디에서든 확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전염병 전파와 관련해 특정 집단에 대해 비난이 쏟아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중세 페스트 창궐 시기에는 유대인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고, 1800년대 후반 뉴욕에서 콜레라, 티푸스가 유행했을 때는 동유럽 이민자들이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1900년 페스트가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했을 때는 중국계 미국인이 혐오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2년6개월간 코로나19 역시 ‘아시아인 혐오’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는가. 미국, 유럽 등에서는 아직도 한국인, 중국인 등 아시아인에 대한 무차별 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시작과 확산이 아시아였기 때문에 아시아인이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느 질병이라도 마찬가지다. 고의로 전파한 것이 아니라면 우연히 ‘감염’의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탄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낙인찍기’는 방역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게 되면 감염이 의심되더라도 검사를 받지 않거나, 확진을 받더라도 치료를 피해 음지로 숨어들게 돼, 추가 확산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코로나19 당시 신천지와 이태원 클럽발 확산에서 이를 경험한 바 있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방역 수칙 위반에서 멈췄어야 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종교와 성적 취향에 대한 거센 비난을 했다.

코로나19 이후 전염병은 인류를 위협하는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이미 WHO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페스트, 콜레라, 결핵, 황열 등 오래된 바이러스뿐 아니다. 지난 50년 동안 과학자들이 확인한 새로운 병원체만 1500종이 넘는다. 그중 지금까지 박멸된 전염병은 천연두, 즉 인간두창이 유일하다.

바이러스의 위험은 앞으로도 모두를 불안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어떤 전염병보다, ‘혐오’라는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높고, 인류에 치명적이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바이러스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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