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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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뚫은 유가·먹거리 물가… “6∼8월 물가상승률 6%대로”

‘2000원 미만 주유소’ 사라지고
4인 가구 식비 월 100만원 돌파

휘발유 ℓ당 2131원 경유 2149원
유류세 인하에도 연일 최고치 경신
경유 1000원대 순창 주유소 한 곳
정치권 “정유업계 고통 분담해야”
초과이익 환수 ‘횡재세’ 추진 예고

1분기 식비 1년전 비해 9.8% 껑충
5월 소비자물가 13년 만에 5%대
외식물가 7.4% 급등… 24년來 최고
감자값 2021년比 71%↑ 양파 110%↑

“유가·원자재가 급등 高물가 지속
임금 과도하게 올리지 않았으면”
한전, 전기료 ㎾h당 3원 인상 요구
추 “인상 더 못 미뤄” 요금 오를 듯
26일 농축산물 등 재료비 인상으로 식비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식당에 가격 인상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은 연일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우며 전국에서 ℓ당 경유값이 2000원 아래인 곳은 한 군데밖에 남지 않았다. 치솟는 기름값에 정유사들의 초과 이윤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일명 ‘횡재세’(Windfall Profit Tax) 도입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먹거리 물가가 급등하면서 4인 가구의 한 달 식비가 월 100만원을 넘어섰다.

◆기름값 2000원 미만 주유소 실종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26일 오후 7시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ℓ당 2131.16원,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2149.16원으로 집계됐다. 휘발유값은 지난 11일(2064.59원), 경유값은 지난달 12일(1953.29원) 종전 최고가를 갈아 치운 뒤 매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기름값이 끊임없이 오르면서 소비자들은 ℓ당 가격이 2000원 아래인 곳을 찾기 어렵게 됐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에서 휘발유 가격이 2000원 미만인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경유 가격의 경우 전북 순창의 자가상표 주유소(1950원) 딱 한 곳뿐이었다.

주간 가격 기준으로는 이달 넷째 주 휘발유 판매 가격은 전주 대비 34.8원 오른 2115.8원을 기록했다. 경유도 전주보다 44.5원 오른 2127.5원으로 집계됐다. 최근까지 국제 휘발유·경유 가격이 강세를 보인 만큼 국내 판매 가격도 당분간 고공행진을 이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연합뉴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고유가 상황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정유업계는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며 “정유업계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횡재세 도입 추진을 예고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권성동 원내대표도 지난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는 세수 부족 우려에도 유류세 인하 폭을 최대한 늘렸다”며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를 불리려 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먹거리 물가 비상… 여름철 농산물 가격 급등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을 보면 올해 1분기(1∼3월) 국내 4인 가구가 지출한 식비(식료품+식대)는 월평균 106만6902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1년 전(97만2286원)보다 9.78% 증가한 액수다.

항목별로 보면 가계에서 장을 볼 때 지출하는 식료품·비주류 음료 구입비(58만773원)가 4.3% 증가했고, 식당 등에서 외식비로 지출하는 비용(48만6129원)은 1년 새 17%나 올랐다.

 

기름값 7주 연속 최고… 폭염까지 겹쳐 ‘金채소’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7주 연속 최고치를 이어 가면서 기름값 2000원 이하 주유소가 사실상 사라졌고, 예년보다 빨라진 폭염 경보와 작황 부진에 여름철 농산물 가격 상승도 예상돼 먹거리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2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농산물을 살펴보고 있고(오른쪽 사진), 한 주유소에는 유가정보가 게시돼 있다. 남정탁 기자

이는 최근 먹거리 물가를 중심으로 소비자물가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8% 올랐는데, 특히 외식물가가 6.1% 급등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2분기(4∼6월) 들어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 올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5.4% 상승하며 2008년 8월(5.6%) 이후 13년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3월부터 4%대에 진입한 데 이어 5월에는 2008년 9월 이후 처음으로 5%대까지 치솟았다. 이 가운데 외식물가는 7.4% 올라 1998년 3월(7.6%) 이후 24년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열무 가격은 최근 일주일 새 1.6배로 상승했다. 감자, 양파 등도 올해 봄철 가뭄과 재배면적 감소의 영향으로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올랐다. 이달 24일 감자 20㎏의 도매가격은 4만480원으로, 1년 전 2만3660원보다 71.1% 상승했다. 양파의 경우 24일 기준 15㎏의 도매가격이 2만2160원으로 1년 전의 1만530원보다 110.4% 비싸졌다. 한 달 전(1만1468원)과 비교해도 93.2% 상승했다.

최근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의 주원인이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보험연구원의 유성훈 선임연구위원과 전용식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소비자물가에 대한 거시변수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2006∼2022년 4월 소비자물가와 주요 거시경제 지표를 분석한 결과, 이러한 특징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추경호 “6∼8월 물가 6%대 전망”… 27일 전기료 조정안 발표

 

추경호(사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8월에는 6%대의 물가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26일 말했다.

 

추 부총리는 이날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최근 고물가 상황을 진단하며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그리고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해 그 영향을 우리나라가 필연적으로 받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추 부총리는 “(물가 상승의) 대부분이 해외발 요인이어서 국제유가가 단기간에 좀 떨어지면 숨통이 트일 텐데 당분간은 그런 상황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반적으로 고물가가 상당 기간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경제단체장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임금 인상 자제 발언과 관련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임금을 올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임금을 과다하게 안 올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연결되고 다시 이것이 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26일 서울 시내 한 다세대주택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전기요금 인상 움직임에 대해서는 “인상해야 한다”며 “차일피일 미룰 수 없기 때문에 조만간 적정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27일 오후 3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산업부는 당초 지난 20일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여부 및 폭을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한국전력의 자구 노력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검토 시간이 길어지면서 발표 시점도 연기됐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연료비 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분기마다 연료비 조정요금이 조정된다. 한전이 산정해 정부에 제출한 조정단가는 킬로와트시(㎾h)당 33원가량이다. 이는 한전이 연료비 요인에 따른 적자를 면하려면 3분기 조정단가를 33원은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폭은 직전 분기 대비 ㎾h당 최대 ±3원, 연간 최대 ±5원으로 제한돼 있어 한전은 최대치인 3원 인상을 요구했다.

 

한전의 올해 적자 규모가 30조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조정단가는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곽은산·김주영·유지혜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