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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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은 “사의”, 방통·권익위원장 “못 나가”…신구세력 거취 진통 [이슈+]

김창룡 경찰청장 전격사의… 윤 대통령 ‘일단 반려’
전 정권 임명, 권익위·방통위원장 “임기 채울 것”
현 정부 국무회의서 두 위원장 배제…최근 감사도
사직 강요 땐 처벌 대상… 尹, 검사 시절 박통 수사
김창룡 경찰청장(왼쪽부터),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뉴시스

최근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논란 등으로 윤석열 정부와 갈등을 겪은 김창룡 경찰청장이 사의를 밝혔혔다. 이에 윤 대통령은 절차를 문제 삼아 이를 반려했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한 인사와 현 정권이 충돌하는 모양새다. 역시 전 정권 때 임명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거취를 놓고도 진통이 예상된다.

 

◆경찰청장은 “그만두겠다”, 대통령은 “지금은 안돼”

 

“역할과 책임에 대해 깊이 고민한 결과 현시점에서 사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의를 표한 김창룡 경찰청장은 “자문위의 논의와 관련해 국민의 입장에서 최적의 방안을 도출하지 못해 송구하다”며 “국민을 위한 경찰의 방향이 무엇인지 진심 어린 열정을 보여준 경찰 동료들께도 깊은 감사와 함께 그러한 염원에 끝까지 부응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경찰청장인 그의 사의 표명은 불과 임기 만료를 26일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 이에 대통령실은 김 청장의 사의 표명에 대해 정식으로 사표를 내면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적 절차에 따라 김 청장이 사표를 내면 징계 심사에 계류 중인지 등을 조회한 뒤 수리 여부를 최종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사의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즉각 사의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논란 등으로 인한 경찰 내부의 반발 기류를 의식한 것이라는 게 경찰 안팎의 평가다. 김 청장의 임기가 한 달 조차 남지 않은 상황에서 모양새 좋지 않게 반발 사표를 즉각 수리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날 김 청장의 사의 표명과 함께, 한 위원장과 전 위원장에 거취 문제가 새삼 주목을 받는다.

 

두 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현 정부가 국무회의에 이들을 불참 통보하면서 포면화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출근길에서 두 위원장의 국무회의 배제 통보를 두고 “굳이 올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다 배석시켜 국무회의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알아서 물러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당도 두 위원장에 대해 불편한 심사를 드러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정치철학이나 국정과제에 동의 안 하는 분들이다.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됐다고 하더라도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한 위원장은 대표적인 민주당 성향의 인물로 꼽힌다. 그는 과거 국가안전기획부 내부 문건을 MBC가 보도한 ‘삼성 X파일’ 사건에서 MBC 측 변호를 맡아 이름을 알렸고, 이를 계기로 2009년 민주당 추천으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인 전 위원장도 국민의힘 입장에선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전 위원장은 과거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 대한 검찰수사에서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는 등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직접 “나가라” 말은 못하고… 방통위 감사 착수

 

이런 상황에서 두 위원장은 임기가 곧 종료되는 김 청장과는 반대로 아직 많이 남아있는 임기를 채우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지난 18일 서울지방변호사회 강연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의 정신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생각한다”며 사실상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한 위원장도 2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통위 방송대상 시상식 후 “최대한 성실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겠다”며 중도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두 인사가 주장하는 임기제 정무직 공무원에 대한 신분 보장은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돼있다. 두 사람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 징계, 장기간 심신쇠약 등의 사유가 아닌 한 신분은 보장된다. 장관급인 두 보직의 임기는 3년이다. 전 위원장 임기는 내년 6월, 한 위원장은 내년 7월 종료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방통위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예정돼있던 정기감사라는 입장이지만 지난 2019년 후 3년 만에 진행되는 감사라는 점에서 한 위원장에 대한 사퇴압박 시그널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 종로구 감사원. 뉴시스

전 위원장은 보수성향의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로부터 직권남용과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과거 고발 사주 의혹의 공익신고자였던 조성은씨의 부패 및 공익신고자 지위 인정과 관련한 직권남용 혐의지만, 공정성과 형평성을 위배한 구체적인 정황이 나올 경우 전 위원장으로서는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불편한 동거’에도 불구하고 현재 윤 대통령이나 정부가 직접적으로 두 인사에게 사퇴를 요구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한 사정이 있다. 과거 정부에서 이같이 임기가 남은 공직자들에 대해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사퇴를 압박해 사법처리를 받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수사 검사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2017년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은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의 사직을 강요한 혐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노 전 국장에게 “참 나쁜 사람”이라며 인사 조처를 지시해 직권남용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당시 특검 수사팀장이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연합뉴스

앞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산하기관장에게 사표 제출을 압박했다는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기도 하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시절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도 비슷한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됐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