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혼을 갈아 넣은 인고의 시간 5년… 두둥두둥∼탁! [밀착취재]

3대째 장구·북 만드는 서인석 장인
서인석 장인이 전라북도 정읍시 전승명가 작업실에서 원통제작 중 장구의 외부 면을 다듬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은 호남농악으로 유명한 지역 중 하나다. 그곳에는 우리 고유의 악기이면서 농악에서는 필수적 악기인 장구와 북을 만드는 장인이 3대째 가업을 이어오며 정읍을 지키고 있다.

전북 정읍 샘고을시장에 위치한 매장에서 장구 수리를 하고 있다.
장인이 건조장에서 오동나무 건조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큰 도끼를 들어 올리는 장인의 어깨가 다부지다. 망치를 자유자재로 내리치는 그의 팔뚝은 마치 영화 속 토르를 연상케 한다. 작업장은 오동나무 고목들로 가득 차 있다. 장구와 북의 크기에 맞춰 잘린 나무, 그 나무에서 잘려나간 부스러기들로 어수선한 모습이다. 한편에는 완성된 북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다른 선반에는 장인이 쓰고 또 썼을 연장들이 손때가 묻은 채 정리되어 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 장(장구와 북) 서인석 장인의 작업장이자 문화전수생들의 장구와 북을 만드는 체험장이기도 하다.

큰 도끼로 나무를 내리치며 장구의 큰 틀을 잡고 있다.
큰 도끼로 나무를 내리치며 장구의 큰 틀을 잡고 있다.

정읍 장구는 다른 지역보다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하나의 통나무를 토막 내지 않고 통째로 깎아서 만든다. 그래서 울림통이 좋아 청아한 소리를 낸다고 한다.

서인석 장인이 북의 원통제작 중 안쪽 면을 깎고 있다.
장인이 작업장에서 원통제작 중 장구의 외부 면을 다듬고 있다.
장인이 작업장에서 원통제작 중 장구의 외부 면을 다듬고 있다.

“정읍의 전통 장구 제작은 나무 선별부터 시작된다. 좋은 나무를 먼저 고른 다음 깎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 건조하는 작업으로 이어지는데 이 또한 대단히 중요해서 2~3년 걸린다. 건조가 잘 되어야지만 대패질이 수월해지고 장구의 소리는 더 맑게 들린다. 마지막으로 장구에 쓰일 가죽을 골라 마무리하면 완성되는데 하나의 전통 장구가 태어나기까지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는 악기장으로 무형문화재지만 장구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전주 대사습놀이서 설장구로 두 번이나 장원을 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으면 원하는 공명을 만들어 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요즘은 연주에 더 빠져 있다”며 웃는다.

작업장 선반에 장인의 공구가 정리되어 있다.
장구의 재료인 가죽을 재단하고 있다.

서인석 장인은 악기 만드는 법을 앉아서 배워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10살 때부터 모든 과정을 어깨너머로 배우며 이 길로 들어선 지 벌써 54년이 지났다고 한다. 3대째 가업 승계를 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국악기 장인이지만 현실은 상당히 어렵다. 시중에 유통되는 장구 대부분이 기계로 빠르게 제작돼 저가로 판매된다. 이에 비해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는 서인석 장인의 장구는 가격 경쟁이 안 된다.

장구에 가죽피를 연결하고 있다.
장구에 가죽피를 연결하고 있다.
턱에서 땀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장인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다. “내가 배운 것처럼 어릴 때부터 나를 도와선지 다들 장구와 북 제작을 곧잘 한다. 연주도 수준급 이상이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아버지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겠다는 자식들이 있어 힘이 된다고 한다.”

장구 한쪽 편에 서인석 장인의 낙관이 찍혀 있다.
완성된 장구를 메고 논둑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장인이 완성된 장구를 메고 논둑으로 나선다. 장구채를 움직이자 두둥 맑은소리가 울려 나온다. 장인이 어깨를 한번 들썩인다. 완성품에 대한 만족인지 미소도 묻어 나온다. 장인의 땀방울과 수천 번의 손길 그리고 오랜 시간이 더해져 하나의 명기가 탄생한다. 이러한 과정을 아는 전국의 연주자들이 이 국악 명기를 찾아 정읍으로 향하고 있다.


글·사진 정읍=이재문 기자 m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