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9160원)보다 5.0% 오른 9620원으로 확정됐다. 5% 인상은 역대 정부가 집권 첫해 결정한 최저임금 인상률 가운데 외환위기 한파가 불어 닥쳤던 1999년(2.7%)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고물가와 경기 둔화 우려가 반영된 결과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불만을 제기하고 있어 당분간 여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30일 노동계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전날 내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공익위원 단일안인 시급 9620원으로 의결했다. 월 환산액(월 노동시간 209시간 기준)은 201만580원이다. 공익위원 측은 국내 주요 기관의 올해 경제성장률 평균 전망치(2.7%)와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4.5%)를 더한 후, 취업자증가율 전망치(2.2%)를 빼 5.0%의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실질임금과 실질 생계 수준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최저임금 결정 산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공익위원 주도하에 ‘속전속결’로 2014년 이후 8년 만에 법정 시한을 지켰으나, 노사 모두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등 ‘잔불’을 많이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노사 양측에서 이번 심의가 졸속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업종별 차등 적용을 둘러싸고 노사의 강대강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난 23일 제6차 전원회의에서야 최초 인상 요구안이 제시됐다. 이와 관련해 본격적인 논의를 한 것은 28일과 29일 열린 7~8차 전원회의 두 차례뿐이다. 또 공익위원들이 인상률 계산법에 인용한 경제 전망치 일부가 지난 5월에 나온 것이어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노동계에선 인상률을 낮추기 위해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보수적으로 잡은 것 아니냐는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6~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6%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인상 수준을 두고도 노사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와 2018년 개악된 산입범위 확대의 영향을 고려하면 인상이 아닌 실질임금 하락”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7월2일에 진행하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이번 결정과 윤석열정부의 노동개악을 폭로하겠다”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낮은 인상률이 저임금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단체들은 오른 임금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에서 “코로나19 여파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중고’가 겹치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도 논평에서 “기업의 경영 애로를 가중시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활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서울지방노동청에서 열린 주요 기관장 회의에서 최저임금 결정에 따른 노사 불만이 큰 상황에 대해 “우리 경제상황과 노동시장 여건 등을 두루 감안해 결정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이는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