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내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캠퍼스 이강숙홀. 미국 최고 권위를 지닌 밴 클라이번 음악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하며 세계 클래식계에 감동을 준 피아니스트 임윤찬(18)군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학 중인 학교에서 열린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임군은 좋아하는 러시아 작곡가 스크랴빈(1872∼1915)의 프렐류드와 소나타 곡을 짧게 선보인 뒤 스승인 손민수 교수와 함께 간담회 자리에 앉았다. 많은 취재진과 카메라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듯 어색한 표정을 한 ‘천재 피아니스트’는 다양한 질문 세례에 느리지만 차분하게 또박또박 답했다.
임군은 콩쿠르 우승 소감을 묻자 “여태까지 다른 생각 않고 피아노만 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우승 전과) 달라진 건 없다. 콩쿠르를 우승했다고 실력이 늘어난 건 아니어서 연습을 더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옆에 있던 손 교수가 “윤찬이와 지금도 많은 부분을 상의하고 있는데, ‘결국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거나 모든 발걸음이 너의 선택으로 이뤄진다’고 얘기해준다. 저도 전적으로 믿고 지켜볼 생각”이라고 거들었다.
참가자 18명이 진출한 콩쿠르 2라운드 때 화제가 된 장면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당시 마지막 연주자였던 임군은 첫 번째 바흐(1685∼1750) 곡을 마치고 두 번째 스크랴빈 곡으로 넘어가기 전 90초 가까이 침묵해 지켜보던 모두를 긴장시켰다. 왜 그랬을까. 그는 “바흐에게 영혼을 바치는 느낌으로 연주한 곡을 마치고 바로 넘어가기가 힘들어서 좀 시간을 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선에서 베토벤 협주곡 3번을 고른 이유로는 “사실 다른 협주곡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큰 무대에서 어떤 곡을 치면 제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어렸을 때부터 쳐온 베토벤 협주곡 3번이 낫겠다 해서 골랐다”고 덧붙였다.
지휘자 겸 심사위원장을 맡아 임군 연주 때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던 마린 알솝에 대해 그는 “초등학생 때 지휘하는 모습을 처음 본 뒤 진심으로 존경해 ‘언젠가 함께 연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통해서였는지 음악이 더 좋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평소 독서를 즐기고 작곡도 병행한 것으로 알려진 임군은 “많은 책을 읽었지만 단테 ‘신곡’을 가장 좋아한다. 여러 출판사 책을 구해 전체 내용을 외우다시피 다 봤다”며 “작곡은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작곡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에게 (작곡한 걸) 보여준 적 있는데 별로 반응이 안 좋았다”며 작곡과는 거리를 둘 뜻을 내비쳤다.
임군은 손 교수에게 받은 영향을 묻자 “선생님은 음악뿐 아니라 제 인생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무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손 교수는 “이미 ‘피아노 속 도사’가 된 듯한 윤찬이는 앞으로 마주칠 도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음악 안에서 모든 문제를 잘 풀어나갈 것”이라며 제자를 응원했다. 오는 8월1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연주를 시작으로 매진 행렬을 빚은 국내 공연이 줄줄이 잡힌 임군에겐 유럽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초청장이 빗발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