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올리지 말아달라?… 논란 커지는 추경호 발언 [세종PICK]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기획재정부 제공

‘물가는 치솟는 데, 임금은 올리지 말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임금 인상 자제’ 발언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물가상승률이 6%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역대급 물가’로 서민 경제가 휘청이는 상황에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운 격이다. 추 부총리의 발언이 일부 IT기업과 대기업의 과도한 임금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을 우려하는 것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노동의 가격’에 관여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의실에서 회장단과 조찬 간담회를 열어 “최근 일부 정보기술(IT) 기업과 대기업 중심으로 높은 임금 인상 경향이 나타나면서 여타 산업·기업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도한 임금 인상은 고물가 상황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더욱 확대해 중소기업, 근로취약계층의 상대적 박탈감도 키운다”고 지적했다.

 

추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일부 대기업과 IT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특히 IT업계 양대 산맥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이미 올해 임금을 각각 15%와 10% 올리기로 했다. 대한항공(10%), 삼성전자(9%) 등 일부 대기업 역시 임금 상향을 예고했다.

 

부총리가 과도한 임금인상 자제를 촉구한 것은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임금 인상으로 높아진 인건비를 기업들이 소비자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전가해, 다시 물가가 상승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추 부총리는 “물가 상승 분위기에 편승해 경쟁적으로 가격·임금을 올리기 시작하면 물가·임금의 연쇄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해 경제·사회 전체의 어려움으로 돌아오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접근은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임금 하락을 고려할 때, 노동자에게 물가 상승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실제 대기업이 임금인상 폭을 낮출 경우 중소기업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실질임금은 마이너스 상황을 맞게 되는 노동자가 속출할 수 있다. 

 

정부가 기업의 임금에 개입하는 것 자체도 문제다. 자유시장논리를 앞세운 현 정부는 ‘가격 정책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노동의 가격’인 임금에는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최근 법인세 인하를 약속한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노동계도 반발의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논평을 통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민간 자율을 강조하는 정부가 왜 대기업 노사문제에 개입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인위적으로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서 바로잡을 것이 아니라 대기업·중소기업 불공정거래 관행부터 바로잡으면 자연스럽게 임금격차는 해소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