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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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번식력…방역해도 역부족” ‘러브버그’ 점령당한 은평구 가보니 [밀착취재]

산에서 주택가로 내려와 주민 피해 막심
최근 일주일 관련 민원 1000여건
인근 시장에 러브버그 사체 가득…상당수 점포 문 닫아
서울 은평·서대문구, 경기 고양시 등지에 이른바 '러브 버그'라 불리는 벌레떼가 출몰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10년간 장사하며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에요.”

 

3일 오후 12시30분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지하철 출입구를 나서는 순간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곳곳에 붙은 러브버그(사랑벌레)와 마주했다. 계단 사이와 구석, 에스컬레이터 손잡이에서도 짝짓기 중인 러브버그 및 사체가 산적해 비명이 절로 나왔다.

 

이들의 몸집은 길이 1㎝가 채 안 되는 수준이나 주로 짝짓기를 하고 있어 두 마리가 붙어 있다 보니 손톱 한마디 길이는 돼 보였다. 한 시민은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으려다가 러브버그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대부분 시민은 바닥에 가득한 러브버그 사체를 피해 조심조심 계단을 오르내렸다. 시민 정모(28)씨는 “벌레가 너무 많아서 괜히 계속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라고 불쾌해했다.

3일 서울 은평구 갈현동 주택가 일대 바닥에 러브버그 사체가 가득 쌓여있다.

◆음식 장사 상인 가장 울상…상당수 문 닫기도

 

연신내역 근처 연서시장 주변 전봇대와 나무 밑에는 상인들이 쓸어놓은 러브버그 사체로 가득했다. 상인들의 표정은 울상이었다. 특히 음식을 파는 상인들의 걱정이 상당했다. 실제로 이날 상당수의 점포 문이 닫혀 있었다. 러브버그 때문에 오전에 출근했다가 일찍 장사를 포기하고 귀가한 것이라고 주변 상인들이 귀띔했다.

 

빵집을 운영하는 박모(50)씨는 “오늘 오전에 출근했다가 러브버그가 너무 많아서 다시 집에 들어갈까 고민했다”며 “이미 빵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아놓고 영업하고 있는데,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10년째 연서시장 정육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준우(59)씨도 “(러브버그가) 어느 정도 많다고 말할 정도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냥 까맣다. 10년간 장사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고기를 팔려면 냉장고를 열어야 하는데 그사이에 벌레가 들어갈까봐 두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산 근처 주택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 보였다. 이날 오후 2시쯤 은평구 갈현동 앵봉산 근처 주택가에선 은평구 보건소 방역단이 방역작업을 벌였다. 방역 차량이 이동하며 도로 방역작업을 실시했다. 방역복을 입은 방역단원은 산과 민가 사이 골목을 집중적으로 방역했다. 러브버그가 주로 산에서 주택가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12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주민 김명희(68)씨는 “여기 동네 사람들은 러브버그가 불빛 보고 들어온다고 해서 밤에 불을 다 끄고 있다”며 “밝은색을 좋아하는지 아침에 보면 흰색 차에 가득 붙어 있더라”라고 설명했다.

 

일부 주민들은 구청의 초기 방역이 늦어져 러브버그 확산을 막지 못했고, 지금도 방역 인력이 너무 적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구청은 해당 방역 작업이 우천 시에는 이루어지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미뤄졌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장마가 일시 소강 상태인 틈을 타 빠르게 긴급 방역에 나선 상태다.

은평구 보건소 관계자가 트럭을 통해 러브버그 긴급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구청 방역 나섰지만…번식력 빨라 확산 차단에 역부족

 

은평구 보건소는 전담팀(TF)을 꾸려 러브버그 근원지인 봉산, 앵봉산, 이말산을 중심으로 집중 방역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민으로 구성된 새마을자율방역단과 자율방재단에 약품과 인력을 지원하는 한편, 전문 민간업체를 통한 방역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러브버그의 엄청난 번식력 때문에 확산을 차단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일주일 사이 러브버그 방역 관련 민원이 1000여건이 넘었다고 은평구는 전했다.

 

러브버그의 정식 명칭은 ‘플리시아 니악티카’다. 중앙아메리카와 미국 남동부 해안 지역에서 발견되며, 1㎝가 조금 안 되는 크기의 파리과 곤충이다. 국내에 유입된 지는 얼마 안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을 공격하거나 질병을 옮기지 않는 ‘익충’으로 알려져 있으나 수많은 개체 수와 생김새가 주민들로부터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올해엔 유독 장마 기간이 길어지며 날씨가 습해진 탓에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러브버그는 현재 경기 고양시, 서울 은평구와 서대문구를 넘어 마포구, 인천시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자외선에 약해 한낮보다는 아침, 저녁에 활동성이 강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브버그 성충은 3~4일동안 짝짓기한 뒤 수컷은 바로 떨어져 죽고, 암컷은 산속 등 습한 지역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파리과 곤충이므로 일반 살충제로 퇴치가 가능하다.

 

은평구 보건소 관계자는 “러브버그는 밝은색이나 불빛에 대응하기 때문에 되도록 어두운 색상의 옷을 착용하고 야간에는 커튼을 통해 불빛을 차단해야 한다”면서 “방충망이나 창문 틈 사이를 통해 집안으로 들어올 경우도 있으므로 집안 틈새를 꼼꼼히 정비하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구윤모 기자 iamky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