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서대문구에서 거주하는 A(83)씨는 아들 B씨로부터 “집에 불을 지를 테니 죽지 않으려면 나가라”는 협박을 들었다. 잔소리를 했다는 이유였다. 또 자신을 노인학대로 신고했다고 착각해 화가 난 B씨는 A씨의 주변 바닥을 향해 자신의 휴대전화를 수차례 던졌다. 존속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씨는 법원으로부터 공소 기각 판단을 받았다. A씨가 아들이 처벌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제출한 처벌불원서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2. 서울 양천구에 사는 C(74)씨는 2020년 친아들 D씨에게 폭행을 당했다. D씨는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C씨가 가만히 누워 있지 않고 자꾸 일어났다가 넘어진다며 손바닥으로 C씨의 얼굴을 수차례 때렸다. 재판에 넘겨진 D씨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양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를 앞둔 가운데, 자녀와 배우자 등에게 협박과 폭행 등 학대받는 노인이 늘고 있다. 폐쇄된 공간과 관계로부터 오는 학대는 노인들의 신고마저 망설이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이 가족 외에도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지역 중심의 위기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1만1918건이다. 신고 건수는 2017년 6105건, 2018년 7662건, 2019년 8545건, 2020년 9707건으로 계속 증가세를 이어왔다. 4년 새 2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행위유형별로 보면 신체적 학대가 82.2%로 가장 많았다. 정서적 학대(9.4%), 방임(1%), 경제적 학대(1%) 등이 뒤를 이었다. 최근 4년간 학대 행위자는 자녀(손자녀 포함) 49.2%, 배우자 46.6%였으며, 가정 내 발생 사건이 96.9%를 차지했다.
가정 내에서 가족에 의해 발생하다 보니 피해 노인들은 학대 사실을 숨기려는 경향을 보인다. 가정사로 치부하거나 가족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신고하지 못한다. 재판을 받게 돼도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해 재학대도 빈번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재학대 건수는 지난해 739건으로 전년 대비 20.4% 증가했다.
노인학대 증가 원인으로는 노인 인구 증가, 피해 인식 확산, 신고의무자 직군 확대 및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증가 등이 꼽힌다. 또 노인 빈곤 문제도 심화하면서 신체나 경제적으로 자녀 및 배우자의 부양 스트레스가 커져 학대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사회적 단절을 최소화하고, 지역사회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전달체계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단절된 관계를 이을 수 있는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며 “그동안 청년, 중장년, 노인 등 세대 분절적인 서비스 전달체계를 운영해왔는데 이는 노인 등 특정 연령층이 소외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인들이 가족 외 관계에서 접촉이 늘어야 학대를 예방하고 발굴할 수 있다”며 “방문 상담 및 심리 치료 등 노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 전달체계를 지역 중심으로 구축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 강화 등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노인학대 공동대응체계’가 필요하다”며 “경찰의 현장대응 및 수사, 지역사회의 노인학대 사전예방 및 인식개선 사업, 피해 노인의 보호와 지원, 전문기관 및 보호시설 확충 등이 체계적으로 맞물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