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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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원전 풀가동으로 ‘여유’… 찜통더위 장기화 땐 안심 못해 [전국 폭염 비상]

전력 수급 2018년과 비교해보니

4년 전엔 원전 8기 정비로 수급 불안
발전설비 총량도 크게 늘어 공급 안정
‘시운전’ 신한울 1호기 비상 투입 가능

내달 무더위 때 수급경보 발령 전망도
여전히 싼 전기요금에 수요 조절 난항
전문가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아껴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보통 ‘한여름’은 장마철이 끝난 뒤 푹푹 찌는 7월 중하순부터 보름 남짓한 기간을 말한다. 그런데 올해는 6월부터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여름철 ‘에너지 보릿고개’를 걱정하게 됐다. 글로벌 에너지 대란으로 석탄, 가스 등 발전연료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수은주가 올라가는 만큼 냉방기기 가동은 늘어 수요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폭염 장기화에 대비해 적극적인 수요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4일 오후 3시 현재 최대전력은 8만7829㎿(메가와트)를 기록했다. 낮 최고기온이 35도 안팎까지 오른 2∼3일은 전력 수요가 줄어드는 주말이었음에도 최대전력이 7만4000㎿대를 보였다. 지난해 같은 날에 비해 16∼19.4% 높은 수준이다.

아직 더위와의 ‘본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력 수요가 여느 해 최대치에 육박하면서 전력 수급에 빨간불이 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부도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에서 다음 달 둘째 주 최대전력이 91.7∼95.7GW(기가와트·1GW는 1000㎿)까지 늘어 전력 예비력이 2013년 이후 처음으로 5.5GW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본 바 있다.

실제 전력피크는 기온과 관계가 깊다. 전국적인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무더위가 닥친 2018년 여름 전력 수요는 9만2478㎿까지 늘어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에 비해 긴 장마로 8월 하순에야 늦더위가 찾아온 2020년에는 6만∼7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던 전력 수요가 8월26일 8만9091㎿로 그해 최대 수요를 보였다.

그러나 올여름 2018년을 능가하는 더위가 찾아오더라도 전력 공급 측면에선 큰 무리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기본적으로 그때보다 발전설비 용량이 크게 늘었다. 한국전력의 전력통계월보를 보면 2018년 7∼8월 국내 발전설비는 11만7000㎿였다. 지금(4월 기준)은 13만3000㎿가량 된다. 신재생에너지 설비가 1만5000㎿ 늘었고, 가스발전과 원전도 각각 3350㎿, 1400㎿ 늘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에너지정책학)는 “2018년에는 설비 용량이 있어도 원자력발전소 8기가 정비에 들어가 수급이 타이트했었는데 올여름에는 원전 정비를 다 마치고 가동할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신한울 1호기가 여차하면 투입될 수 있는 것도 걱정을 덜어 주는 요소”라고 했다.

신한울 1호기는 1400㎿급의 국내 27번째 원전으로 지난해 7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운영 허가를 받아 지난달 9일 첫 계통연결에 성공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송전선로에 흘려보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다만, 아직은 시운전 중이다. 정부는 신한울 1호기 등 9.2GW의 추가 예비자원을 확보한 상태다. 예비자원이란 평상시에는 가동하지 않지만, 예비력이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동원되는 것을 말한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전기공학)도 “신한울 1호기의 용량이 꽤 되는 만큼 (위기 시) 본격 활용하고, 그다음 자가발전 설비가 제대로 동원되도록 미리 설비 점검도 한다면 공급 측면에서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의 대형마트 앞 전광판에 낮기온이 36도를 가리키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전기를 여유 있게 써도 된다’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했다. 열대야나 폭염이 3∼4일 이어지다 한풀 꺾이면 괜찮지만, 일주일 이상 계속될 경우 수요가 제어 불가능한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현재는 전기를 편하게 쓰면 안 될 때는 분명하다. 외국을 보면, 유럽도 그렇고 일본도 정전이 발생할 수 있으니 전기를 쓰지 말라는 경고음을 계속 내는 상황”이라며 “우리도 경각심을 갖고 아낄 수 있는 부분에서 아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수요를 조절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가격’(전기요금) 신호가 한국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전기요금이 시장에서 결정돼 연료비가 오른 만큼 전기요금도 오르지만 한국에선 정부가 가격을 통제해 최소한의 상승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 전기요금을 20∼30% 올렸고, 유럽에서는 50% 이상 올린 경우도 있지만, 국내 인상률은 10%에 못 미친다. 한전의 ‘30조 적자’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 교수는 “여름철 전력수급이 어려워지는 가장 큰 요인은 냉방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라며 “전기요금이 정상화되면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회복된다. 근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윤지로·곽은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