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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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디지털 유산 상속

토종 SNS인 싸이월드는 스마트폰과 모바일 시대가 오기 전인 2000년대 중·후반 미니홈피 열풍을 이끌었다. 회원이 한때 3200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2019년 10월 서비스를 중단했다. 3년 만에 부활한 싸이월드가 세상을 떠난 사용자의 글과 사진 등을 유족에게 넘기겠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싸이월드 운영권을 인수한 싸이월드제트에 따르면 이 회사가 최근 시작한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 신청이 2400여 건으로 집계됐다. 싸이월드 회원의 글·사진 등 게시물 중 공개 설정된 데이터를 일정 요건을 갖춘 유족이 신청하면 상속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장 큰 쟁점은 일종의 ‘디지털 유산’이라는 관점과 유족이라도 고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없다는 입장의 충돌이다. 서비스 옹호자들은 고인의 SNS에 남아있는 사진과 영상, 다이어리 등의 게시물은 디지털 유산이라고 본다. 고인이 쓴 책이나 일기장, 편지 등 유품을 유가족이 물려받는 것과 같다는 논리를 편다. 반면 반대자들은 “아무리 유족이라 할지라도 고인의 모든 데이터를 볼 권리는 없다”며 이른바 ‘잊힐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에선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8년 독일 연방법원은 사망한 15세 아이의 페이스북 계정에 대해 어머니에게 접속 권한을 부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애플은 지난해 계정 소유주가 유산 관리자를 최대 5명까지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유산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구글은 계정 소유주가 일정 기간 이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계정을 대신 관리할 사람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국내에는 디지털 유산을 별도로 규정하는 법률이 없다. 네이버는 유족이더라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요청 시 공개 정보만 백업해 제공하고 나머지는 회원탈퇴로 처리한다. 다른 회사도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계속 축적되는 디지털 정보를 무한대로 남겨둘 수는 없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사후에 가족들이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기록·데이터 관리에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채희창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