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2020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정보 유통망에 올라온 40여 건의 관련 기밀정보를 삭제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삭제 시점이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 직후로 알려져 회의에서 삭제 관련 논의가 있었는지를 비롯해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이영철 전 합참 정보본부장 등 당시 핵심 직위자들의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군 정보 유통망인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밈스·MIMS)에 올라온 민감한 첩보가 직접적인 업무와 관계없는 부대까지 전파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했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밈스에 올린 첩보 원본은 무단 삭제한 것이 아니라 업무와 무관한 예하 부대까지 전파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했다는 뜻이다.
지난 7일 국방부를 방문한 더불어민주당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테스크포스(TF) 역시 "(밈스에서) 이렇게 삭제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많다고 한다"며 "처음에는 정보를 모든 부서에 보내는데 정보가 좁혀지면서 해당되지 않는 부서에 공유할 필요 없는 게 있으면 배부선을 조정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국방부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8일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밈스에 탑재되는 정보의 '배부선 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실제로는 흔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밈스는 사단급 부대까지 연결되어 있어 접속 권한을 가진 군인이 많다.
밈스 정보 게시자는 열람자를 지정하거나 뺄 수가 있는데 군은 이를 '배부선 조정'이라고 한다. 만약 군이 필요한 조치였다고 주장하는 '배부선 조정'이라는 작업이 '삭제'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면 사안이 더 위중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밈스는 국방부 장관과 합참 정보본부장이 관리 책임을 맡고 '마스터'라 불리는 실무자가 장비를 운용하는데 마스터는 업무상 삭제 결정을 자의로 내릴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삭제는 최고위급의 결단만으로 가능한 작업이고, 밈스에서 유통되는 첩보·정보를 삭제할 경우 최종적인 보고에 담길 내용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삭제와 배부선 조정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서해 공무원 사건과 관련 지난달 국방부 및 해양경찰을 상대로 감사에 들어간 감사원은 밈스 사안에 대해서도 배부선이 조정된 첩보·정보의 원본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감사원이 전반적으로 포렌식 등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밈스 정보 삭제는 당시 청와대에서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직후 이뤄져 '윗선'과 맞닿아 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2020년 9월 21일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실종되고 이튿날 오후 이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살되자 23일 오전 1시께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관계장관회의가 열려 박지원 국정원장, 서욱 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같은 날 오전 10시께 다시 관계장관회의가 있었고 오후 1시 30분께 국방부는 이씨의 피살 및 소각 사실을 확인한 상태에서도 그가 실종됐으며 월북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만 언론에 발표했다.
군의 밈스 정보 배부선 조정은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이후부터 23∼24일에 걸쳐 이뤄졌다. 일각에서는 이씨의 월북 가능성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가공하기 위한 논의가 당시 회의에서 이뤄지지 않았느냐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긴급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23일 오전 1시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과 관련한 사전녹화 기조연설을 진행 중이던 때라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맞춰 사안을 각색하려 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감사원이 밈스 정보 문제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들도 감사 대상에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욱 전 장관은 밈스에 탑재된 원본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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