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치러진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압승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11일 헌법 조기 개정과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를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가 선거 당일에 이어 이틀 연속 이같이 밝히면서 일본이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등의 개정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시아 군비 경쟁 가속과 주변국의 반발도 예상된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후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뜻을 이어받아, 특히 (아베 전 총리가) 열정을 쏟아온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와 헌법 개정 등 (아베 전 총리가) 자신의 손으로 이루지 못한 난제를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헌법 개정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 (개헌안을) 발의하기 위해 노력해가겠다”며 국회에서 여야 간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선거날 저녁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개헌) 발의를 위해 3분의 2 결집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가능한 한 빨리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자민당은 전날 125석을 놓고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63석을 얻었다. 공동여당인 공명당은 13석을 차지했다. 이로써 참의원 전체 248석 중 공동여당 의석은 과반(125석)을 넘은 146석(자민당 119석, 공명당 27석)이 됐다.
자민당, 공명당과 함께 개헌에 찬성하는 일본유신회는 21석, 국민민주당은 10석이 됐다. 이에 따라 참의원 내 개헌 세력은 177석으로 개헌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166석) 선을 넉넉하게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자위대 헌법 명기 등의 개헌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재의 일본 헌법 9조는 전쟁 포기, 전력(戰力) 보유·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평화헌법이라고 불린다.
일본에서 개헌은 중의원(하원), 참의원에서 각각 전체 3분의 2 이상이 발의하고, 국민투표에서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가능하다. 지난해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개헌 세력은 3분의 2(전체 465석 중 310석)를 훌쩍 넘는 352석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중국은 일본의 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본의 개헌 문제는 국제사회와 아시아 이웃 국가들로부터 고도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일본이 역사의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평화적 발전의 길을 견지하고, 행동으로 아시아의 이웃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를 희망한다”고 지적했다.
뤼야오둥(呂燿東)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개헌에 성공하면 일본은 해외전쟁 참여가 가능하고, 군사 대국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헌이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일본이나 자민당에서 의욕적으로 개헌을 추진할 할 사람이 많지 않다”며 “당에서 하자고 하면 총론에서는 다 찬성하겠지만 서로 내용으로 다투고, 얼마나 빨리할지에 대해서도 갈리는 데다, 국민투표를 통과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개헌안이 발의된다고 해도 2∼3년 뒤에나 국민투표가 진행될 텐데, 그때 정권이 어떻게 될지 역시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헌 세력들 ‘자위대 명기’ 놓고 이견… 주변국 반발도 변수
개헌을 위한 머릿수는 일단 채워졌다. 10일 치러진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일본 국회의 개헌세력은 개헌발의 정족수를 훌쩍 넘기는 의석을 확보했고, 지난해 열린 중의원(하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가능한 한 빨리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개헌이란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는 이견을 보이는 개헌세력 내부의 교통정리를 어떻게 해소할지가 과제다. 개헌의 최종 절차인 국민투표 역시 넘기가 쉽지 않은 장벽이다.
◆개헌선 확보한 일본 향후 행보는
11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치권의 개헌세력 자민당, 공명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의 참의원 내 의석수는 이번 선거로 전체 248석 중 177석이 돼 개헌발의선(166석)을 훌쩍 넘었다. 중의원도 개헌에 찬성하는 무소속 의원 등을 포함해 개헌세력이 전체 465석(3분의 2는 310석) 중 352석이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헌법 9조에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 대응 조항 신설’, ‘참의원 선거 합구 해소’, ‘교육 환경 충실’ 등 4개 항목을 개헌 과제로 제시해 공약에 넣었다. 이목이 집중되는 건 역시 자위대 헌법 명기다. 이는 일본이 패전 뒤 77년 동안 갖지 못한 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포함한 보수파들은 “개헌으로 자위대를 둘러싼 위헌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자위대 명기는 전쟁포기, 전력의 보유·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은 헌법9조에 배치될 소지가 크다. 자민당은 헌법9조를 그대로 유지하되, 자위에 필요한 조직을 두는 것이 헌법9조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다는 취지의 설명을 포함해 자위대의 존재를 규정하는 ‘헌법 9조2’를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군사대국화에 주변국 반발은 어떻게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도 예상해야 한다. 과거 침략 피해를 당한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극도로 경계한다. 북한의 핵개발에 이은 일본의 재무장과 동북아시아 군비경쟁 가속화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개헌을 한다면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개헌될 경우엔 군비 경쟁이 가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사시 자위대 한반도 진출에 대해선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나아가서 악사(상호군수지원협정)까지 간다면 한반도 유사 사태 시 그 방향으로 갈 수 있지만 윤석열정부가 거기까지 감수를 할지는 잘 모르겠다”며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일본 정부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시도는 방위비 증액, 적기지에 대한 반격능력의 보유 등과 일본의 군사력 확대 움직임도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자민당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수준인 방위비를 향후 5년 내에 2%로 올리겠다는 구상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계획대로라면 일본의 방위비는 올해 5조4005억엔(약 51조원)에서 10조엔을 넘게 된다. 현재 세계 국방비 지출 9위인 일본이 5년 뒤인 2027년이면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군사비 지출 국가가 되는 것이다.
◆“개헌 내용에 동의하는 3분의 2가 필요하다”
개헌이 신속하고,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개헌세력 내부에 개헌의 시기, 방향 등을 두고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동여당인 공명당은 자민당의 자위대 명기에 거리를 두고 있다. 공명당은 “많은 국민이 자위대 활동을 지지하고 있고, 헌법을 위반한 존재라고 보지 않는다”며 “계속 검토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민주당은 공약집에 헌법9조에 대해 자위권 행사 범위, 자위대 보유·통제에 관한 규칙 등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모호하게 기술했다.
지난달 21일 토론회에서 개헌 발의 시기를 묻는 질문에 기시다 총리는 “발의에 찬성하는 세력 3분의 2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에 관해 일치가 가능한 세력 3분의 2가 모여야 한다”고 답했다. 개헌세력 내의 이견과 조정의 어려움이 있을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전에 비해 여론이 호의적인 것은 맞지만 국민투표가 진행되면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보 위협은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부결될 경우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국민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기시다 총리가 퇴진할 수밖에 없다”며 “잃을 것이 많기 때문에 당내에 신중론도 있다”고 전했다.
◆‘日 우경화’ 尹정부에 또 다른 암초… 양국 ‘조문외교’로 돌파구 찾을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사망 속에 치러진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일본 정계의 급속한 우경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의 매듭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윤석열정부로서는 또 다른 암초를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한·일관계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주목되는 가운데, 양국 간 최고위급의 ‘조문 외교’가 관계 개선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11일 내신 기자 대상 정례 회견에서 “일본의 국내 정국 상황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일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날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압승 이후 개헌이 속도감 있게 추진된다면 한·일관계 개선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에둘러 답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보수 우익의 구심점인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하면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보통국가)로의 개헌과 방위비 증액 등의 움직임으로 일본의 군국화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박 장관은 “일본의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뭐라고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다만 일본이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저희들이 예의주시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는 아베 전 총리의 사망과 관련해 고위급 조문사절단을 파견할 계획이다.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 한·일관계 개선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고 했던 윤석열정부는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이라는 돌발 변수 속에 우선 한·일 간 최고위급 ‘조문외교’로 신뢰를 복원하고 실질적인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는 복안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금명간 주한 일본대사관에 마련된 아베 전 총리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조문사절단 대표를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을 했다. 한 전 총리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박진 장관 등으로 구성된 조문단은 3∼4주 후쯤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일본은 가족장을 치른 뒤 3∼4주 후 국가 주요 인물의 추도식을 갖는다”며 “한 총리의 방일 시점은 약 한 달 뒤일 것”이라고 전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애초 올해 하반기 방일해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을 계기로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한편, 외교부는 오는 14일 한·일관계 최대 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두고 해법을 모색하는 민관협의회 2차 회의를 개최한다. 박 장관은 이와 관련해 “민관협의회를 통해 관련 당사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하고 있다”며 “이것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