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오일기업 셸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숏폼 플랫폼 ‘틱톡’의 매니저 채용에 나섰다. ‘고유가 덕에 떼돈 버는 석유기업’이라는 이미지 대신 ‘석유는 국가 안보’라는 인식을 대중에 심기 위해서다. 영국의 BP와 미국의 셰브론은 물론 석유·가스 업종에 600개 이상의 회원사를 둔 미 석유협회(API)도 대대적인 캠페인에 뛰어들었다.
1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석유 기업들은 캠페인성 광고에 특히 열을 올리고 있다. 전 세계적인 화석연료 퇴출 움직임에 움츠러들었던 이들 기업이 최근 에너지 위기를 맞아 화석연료를 에둘러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BP의 경우 최근 페이스북에 ‘정치·사회 이슈’로 분류된 광고에 큰돈을 쏟아붓고 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에 따르면 BP가 지난 5일까지 일주일간 집행한 광고비는 22만 파운드(약 3억4000만원)로, 두 번째로 많은 광고비를 낸 국제구호위원회(IRC)보다 6배나 더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BP가 내보낸 광고에는 “우리는 영국을 지지한다”, “국내파 에너지” 같은 슬로건이 등장한다. BP는 에너지 안보를 뒤흔든 러시아가 아니라 ‘영국 기업’이라는 점을 앞세워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략이다. ‘북해산 석유·가스’, ‘장기 에너지 안보 계획’ 같은 표현도 등장한다. 영국에서 소셜미디어 정치광고를 모니터링하는 ‘후타겟츠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BP의 광고는 그린 에너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석유기업이 재생에너지에서 은근 슬쩍 화석연료를 두둔하는 식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BP는 “국내파 에너지에 관한 우리의 계획은 궁극적으로 석유와 가스, 풍력, 수소, 전기차 충전소 등 다양한 것을 포함한다”며 “우리의 장기 투자 계획도 이런 점을 반영한다”고 했다.
셰브론은 페이스북 광고에서 “치솟는 에너지 수요에 부응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고자 (미 남부 셰일오일·가스 생산지인) 퍼미안 분지의 시추를 15% 늘린다”고 알렸다. 구글 광고에서도 “셰브론은 ‘믿을 만한’ 에너지 수요에 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PI도 페이스북에 ‘미국산 에너지’, ‘미국 천연가스·석유’를 앞세운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API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방침에 저항해 왔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운이 감돌던 지난 1월26일부터 4월 1일 사이에 761건의 광고를 내보내 1960만 명에게 노출했다. 지난해 10∼12월 67건의 광고를 낸 것과 대조적이다. 캐시 멀비 참여과학자모임 책임이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에너지 시장을 확실히 망가뜨렸다”며 “API가 청정 에너지와의 로비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API는 FT에 “우리는 정부가 미국의 천연가스와 석유를 기업과 가정이 매일 기대고 있는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전략자산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틱톡 매니저를 채용 중인 셸도 “2022년 기업 지출의 35%가 저탄소 에너지, 비에너지 제품 생산에 투입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