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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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더 급했다…사상 첫 빅스텝 배경은

이창용 "인플레 기대심리 제어 않으면 고물가 고착화"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원화 약세도 고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것은 소비자물가가 6%대까지 오르는 등 고(高)물가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 둔화, 유럽발 경기침체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 성장 모멘텀이 약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성장보다는 물가를 더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가가 더 뛰어 오를 경우 고물가가 고착화 될 수 있고, 실기했다는 논란도 불거질 수도 있다. 한은은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선제적인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물가를 잡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은은 앞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서도 "물가상승압력이 전방위로 빠르게 확산되고 기대인플레이션도 상승세를 지속하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도모해 경제주체들의 물가불안심리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선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기적 시계에서의 거시경제 안정화 도모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밝힌바 있다.

 

실제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를 기록하면서 기준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감을 막을 필요가 큰 상황이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0%로 외환위기였던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2월 3%대에서 3~4월 4%대를 기록하더니 5월 5.4%, 6월 6.0%로 점차 커지고 있다. 올 들어 물가는 전월대비 0.6~0.7% 올랐는데, 이런 추세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경우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 후반에서 8%대에 달하게 된다.

 

'빅스텝'은 가계와 기업에 부담을 주고 시장에도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좀처럼 하지 않는다. 실제 그동안 한은 역사상 '빅스텝'을 단행한 경우가 단 한번도 없다. 그만큼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막는 게 성장보다 더 급하다는 인식이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선언한 새 정부와의 정책 공조도 고려됐을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7%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13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6%대로 치솟으면서 과감한 금리인상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 1.75%에서 2.25%로 0.50%포인트 인상했다. 뉴시스

향후 1년간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보는 6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3.9%로 전월대비 0.6%포인트 급등했다. 이는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최고치다. 전월대비 상승폭(0.6%포인트)도 2008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사상 최대 상승 폭이다. 지난 1년간의 소비자물가에 대한 체감상승률을 뜻하는 '물가인식'도 4.0%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동안 기대인플레이션은 실제 물가 움직임에 후행하는 경향을 보여왔는데 기대인플레와 물가가 빠르게 오르는 상황에서는 기대인플레의 물가 파급 효과가 과거에 비해 커질 수 있다. 기대인플레까지 크게 오르면서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한은으로서는 이를 그대로 두고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물가 급등에 우려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달 21일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외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지난달 열린 금통위에서도 금통위원 전원이 물가 급등 등을 이유로 추가 기준금리 필요성을 지적했다.

 

한 금통위원은 "내년에도 목표치를 상회하는 물가경로가 예상되는 만큼 이번 인플레이션의 지속기간은 과거에 비해 길어 보인다"며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른 물가의 2차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데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의 구조적인 변화가 물가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체 지속성을 지닌 인플레이션의 발생 가능성마저 우려된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청사. EPA연합뉴스

또 다른 위원은 "당분간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되고 내년에도 물가안정목표를 크게 상회하는 물가경로가 전망되는 데다 미국과 주요국들의 가파른 금리인상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속도가 빨라져 한·미 금리가 역전이 임박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자본이 대거 유출되고, 원화 가치도 떨어질 수 있다. 환율 급등으로 인해 수입 물가가 오르고, 소비자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한은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기준금리를 1.75%포인트 올려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벌려 놓은 상황이지만 한미 금리 역전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날 0.5%포인트 인상으로 일단 미 연준 기준금리(1.5∼1.75%)와 격차는 상단이 0.5%포인트로 커졌다. 하지만 미 연준이 이미 오는 26~2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할 것임을 예고한 상황이다. 이번달 한미 기준금리 역전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줬다. 미 연준 긴축 가속화, 유럽발 경기침체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금융위기 때 수준까지 올랐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환율은 12일 1312.1원에 마감하는 등 2009년 7월 13일(1315.0원)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