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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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정치를 묻는다

尹 국정수행 지지율 30%대 초반
지향점 불분명해 메시지 겉돌아
“두려워할 것은 민심에 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 복원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70일이 지났다. 그동안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30%대 초반으로 떨어졌고 부정평가는 60%를 넘어섰다. 중도층뿐 아니라 국민의힘 지지층마저 대거 이탈한 것이다. 당권 갈등에 휩쓸린 국민의힘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에 뒤진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에서 지지율에 대해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국민만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그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마음속이야 그럴 리 있겠는가. 가뜩이나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는 국면이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는 “말이 수레를 끌다가 놀라면 군자는 수레에서 안정될 수 없고, 서민이 정치에 놀라면 군자는 그의 자리에 안정되지 못한다”며 “서민들이 정치에 안심한 뒤에야 군자는 그의 자리에 안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임금은 배요, 서민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순자’ 왕제편)는 말이 나온다. 당나라 때의 사관 오긍이 쓴 ‘정관정요’에선 재상 위징이 이 말을 인용하면서 “두려워할 것은 민심에 있다”고 했다. 정치의 근본은 사람들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이다.

박완규 논설위원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첫 번째 원인으로 인사 난맥상이 꼽힌다. 장관 후보 인사검증 실패나 대통령실 사적 채용 의혹이 불거지면 부적절한 해명으로 논란을 키우는 일을 반복한다. 인사가 왜 중요한지를 모르는 모양이다.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지적 능력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 주변의 인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유능하고 충성스럽다면, 군주는 항상 현명하다고 사료된다. 군주가 그들의 재능을 파악하고 그들의 충성심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군주론’)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방식이나 태도가 더 큰 문제다. 매사를 문재인정부와 비교하고 잘못이 있으면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면서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걸었다. 정책 성과는 기대와 거리가 멀었지만, 최소한 무엇을 지향하는지는 분명했다. 지금은 윤 대통령이 무엇을 지향하는지가 선명하게 와닿지 않는다. 이러니 대통령의 메시지가 겉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참모나 여당 지도부는 직언을 하지 못한다. ‘정관정요’를 보면 당 태종이 “근래 조정 대신들은 한결같이 나라의 큰일에 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데, 무엇 때문인가”라고 묻자 위징이 대답한다. “폐하께서 마음을 비우고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마땅히 말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사람들의 재능은 각기 다릅니다. 성격이 유약한 사람은 속마음이 충직해도 말을 하지 못하고, 관계가 소원한 사람은 신임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 감히 말하지 못하며, 마음속으로 개인의 득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므로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침묵을 지키고 남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며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자성해야 할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가 근본 문제다. 대통령이기 전에 정치인이지만 정치 경험이 없는 데다 정치와 거리를 둔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인사도 잘 만나지 않는다. 어쩌다 만나면 자기 얘기로 시간을 채운다고 한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어찌 국정수행 방식·태도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치학자 김경희는 “마키아벨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윤리나 도덕이 아닌 정치의 관점에서 먼저 생각했다. 즉 옳은 정치가 좋은 것은 그것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힘을 가져오기 때문”(‘마키아벨리’)이라고 했다. 국민의 신뢰를 받아 민심을 끌어오면 국정 동력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달린 일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경청과 설득에 힘써야 국정 현안을 풀어 나갈 길을 찾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내세우는 법치는 정치를 대신할 수 없다.


박완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