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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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돕는 게 목회” 완주 산골마을서 농사 돕는 안양호 목사

“예배와 찬양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이웃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드리는 것도 중요한 목회입니다.”

 

19일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위봉마을 위봉교회에서 만난 안양호(60) 담임목사는 “다행히 농기계를 다루고 수리하는 재능이 있어 마을 어르신들을 도와드릴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 목사는 이 동네에서 하루를 48시간으로 쪼개 쓰는 ‘농부목사’로 불린다. 2018년에 폐허로 남아 있던 이 교회에 부임한 뒤 목회 활동을 하는 수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이웃의 밭을 갈아주거나 고장 난 농기계를 수리해주는 등 마을 대소사를 함께 하면서 붙은 별명이다.

 

30여 가구가 사는 위봉마을은 안 목사가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활력을 잃은 오지산골에 불과했다. 특히 해발 350m 분지인 데다 주민 대부분이 70대 이상 고령이어서 가파른 산길의 밭농사가 힘들어 놀리는 땅이 더 많았다. 농번기철이면 풀이 우거진 경사진 밭을 갈다 농기계가 뒤집힌 바람에 병원 신세를 지는 사고도 빈발한다.

 

그는 악조건에서 밭일을 하는 이웃들을 돕기 위해 중고 농기계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젠 예초기와 관리기, 경운기, 트랙터, 땅속 작물 수확기까지 20여 종이나 된다. 그는 이 농기계로 무성한 잡초를 제거해주고, 경사진 곳의 조그마한 ‘뙈야기밭’도 척척 갈아드린다. 최근에는 힘이 없는 노인들을 위해 장작 패는 유압 도끼까지 장만했다.

 

서울시립대를 나와 미 코넬대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안목사는 군산기계공고 시절 배우고 익힌 덕분에 농기계를 제법 잘 다룬다. 수리도 잘해 고장이라도 나면 곧장 달려가 척척 해결해준다.

 

안 목사는 “힘들게 일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농사도 직접 지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부임 초기에만 해도 노는 땅에 고구마를 심겠다고 하자 마을 주민들은 “농사일도 모르는 목사님께서 무슨… 멧돼지가 다 먹을 텐데…”라며 시답잖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농사는 아주 잘 됐고 집집마다 굵직한 고구마를 한 박스씩 나눠준 이후부터는 모두 ‘엄지척’이다. 지난해부터는 1300㎡ 규모의 포도농사도 지어 이웃과 나누고 있다. 또 과거에 배워둔 제빵 기술로 빵을 만들어 인근 학교와 군부대에 나눠주는 봉사를 지속하고 있다.

 

앞서 안 목사는 부임 초기 꽃길을 만들어 마을 분위기를 환하게 바꿨다. 최근에는 해바라기 8500주를 심고 포토존을 만들었다. 또 산속 장터인 ‘마운틴 마켓’을 열고 버스킹 공연을 해 ‘스토리가 있는 마을’로 입소문을 타면서 사진작가들과 외지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 새로운 명소가 됐다.

 

“이웃을 섬기고 도움을 주고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이 은총”이라는 안 목사는 “비가림막이 없어 녹슬고 노후화하는 농기계를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는 게 소원”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